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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2회 수상작 / 최수하, 중편소설 「술래 눈 뜨다」
작성일자 2020-01-20
조회수 4166
제2회 박상륭상 수상작 


▶ 수상자 : 최수하
▶ 수상작 : 중편소설 「술래 눈 뜨다」




------ 수상작 ------------


술래 눈 뜨다

 


 

   

   서(序) - 혼육분리(魂肉分離)를 설(說)함에 앞서



그것은 상상도 아니요, 꿈도 아니며 엄연한 이 세상일이었다. 하여 나는 왜놈 강도들한테 잡혀 고초를 겪으며 몇 달씩 말뚝잠을 잘 때도 갑갑치 아니 하였다. 나는 자유였던 것이니. 지극한 정신으로 의념하고 또 의념하면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보이었고, 연후에 이곳과 저곳의 구분을 없이하매 어찌 자유치 아니 하였으리. …… 애당초 나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왜놈 강도들에게 하염업시 매 맞고 시다린 끝에 바다 물마루처럼 심대해진 자유코져 하는 렬망과 사모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의 환(幻)으로 치부하였으나, 환이 크고 회를 거듭하매 차츰 두려븐 마음이 가시며 환이 환 아니게 되이었다. 차차로 미립이 나자 편하게, 시나브로 환희에 차서 그 환을 즐겼던 것이니, 그것이 엄연한 현실임을 알게 된 소이(所以)이로다. 내가 겪은 그 일을 무어라 명명할 것인가 적지 아니 고민하였으나 혼육분리(魂肉分離)라는 말보다 더 조흔 것이 찾아지지 않아 종내(終乃) 그리로 작정을 하는 바 되이었다. …… 그 신기묘묘한 체험을 타인에게 발설치는 아니 하였다. 그리해 보았자 나를 감옥살이하다 미친 자로밖에 누군들 취급하지 안으리. 하물며 나는 류물의 변화원리로써 세상 내막을 재고 앞날을 추량해 왔음에랴. …… 작금의 내 나이 고희를 지나 지친 육신 곧 영구히 버리고 망종길에 입(入)하려니 나의 체험을 그대로 묻어두고 가기 사뭇 쓸쓸하다. 생시탈혼(生時脫魂)의 대자유를 나만 알고 묻으려니 어찌 분하지 안으랴. 내 여기 졸한 솜씨로 몇 자 적어 천지간에 미만하나 아는 이 적은 혼육분리의 묘와 술을 설하여 놓다.





   1.



재소자들에게 그는 어떤 섭리와도 같은 존재였다. 우갑춘, 그의 이름뿐 아니라 수인번호 5051 역시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는, 어떤 신성을 띤 것이었다.  소내 허드렛일을 맡은 봉사원들은 배식 때면 우갑춘과 그의 조직 아우들 식판에 콩나물 대가리 한 점이라도 더 들어가도록 국물통에 국자를 깊이 넣고 저었다. 운동시간엔 일반 잡범들은 우갑춘 패거리가 차지하고 남은 마당 구석에서나 어정대며 기껏 맨손체조나 제자리뛰기 정도 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가끔은 눈치가 보였다. 우갑춘의 너른 그림자에 깃들인 축들은 운동장 햇빛 아래에서 담배까지도 피울 수 있었다. 몇몇이 교대로 가려주고 피우고 하는 것인데, 교도관들이 봐도 갑춘이네 식구들이다 싶으면 그냥 지나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 우갑춘이 만기 출감을 며칠 앞두었을 즈음, 무기수 2347영감이 감히 그의 멱살을 쥐고 늘어지는 소동을 벌였다. 감방 벽에 제 머리를 짓찧기도 했다. 우갑춘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2347은 제풀에 허물어져 바닥에서 몸을 오그린 채 부들부들 떨었다. 게거품까지 토한 끝에 정신을 완전히 잃었지만 그의 어깨와 등줄기로 흐르는 경련은 간헐적으로나마 지속되었다. 그의 얼굴은 나이 가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늙고 얽어서 실주름들조차 칼로 짼 듯 깊었다. 큰 동물의 똥구멍처럼 주름진 입가에는 조금 전 게운 거품이 묻어있었다. 바닥의 그 거품 토사물 속에는 2347의 망가진 틀니가 떨어져 있었다.

2347의 눈꺼풀이 떨리는가 싶더니 다시 열렸다. 감정이나 속내, 초점마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극노인 특유의 회색 눈동자가 그 안에 박혀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쉰 목소리가 오그려진 입술 새로 새 나왔다.

- 주인다, …주여, 이……이 화장호…… 이 물초새이……

우갑춘의 양쪽 눈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틀니를 주워 2347 눈앞에 내밀었다. 

- 말, 이거 끼우고 해라. 발음 새잖니.

2347은 틀니를 억지로 끼워물고 몸을 추슬러서 이번엔 우갑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거의 모든 근육이 말라붙은 팔 다리 관절에서 뚝뚝, 소리가 났다.

2347이 말했다.

- 살려주십시오. 황장호 박사님, 제발 나오세요. 

우갑춘의 기름 낀 볼살이 잠시 씰룩였다. 웃음이 감돈 것인지 인상을 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눈길을 허공으로 옮기며 턱을 치켜들었다. 목이 짧고 굵어서 부풀어 오른 승모근 위에 바로 얼굴이 얹힌 듯 보였다. 그는 2347의 얼굴을 토닥이며 말했다.

- 그만해라. 다 끝난 일이잖니. 그리고 난… 우갑춘이야. 황장호가 아니라고.

그는 돌연 2347의 얼굴을 두툼한 손바닥으로 밀쳐냈다. 2347은 마른 가지가 부러지듯 나자빠졌고 그대로 표정 없는 멀건이가 되었다. 변기통 쪽 구석에서 아까부터 무릎을 꿇고 돌아앉아 있던 꽁지와 빠돌은 서로 눈을 맞추며 불안에 떨었다. 그들에게 우갑춘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 야, 잡놈들!

- 예? 예, 형님.

- 나 목욕 좀 해야겠다. 봉사원한테 저 영감도 데려오라고 해. 


목욕탕에서 우갑춘은 제 벌거벗은 모습을 꼼꼼히 감상하며 어루만졌다. 굵고 바라진 어깨하며 그 어깨에 새긴 곰의 앞발 문신, 똥배가 나왔지만 아직은 복근의 갈라진 자국이 보이는 배, 실리콘을 넣고 강화 수술을 해서 엔간한 아이 주먹만큼이나 커다래진 귀두까지. 천생 깡패로서의 훈장도 붙어있었다. 오른쪽 아랫배에 움푹 함몰된 부위가 있고, 왼쪽 빗장뼈에서 겨드랑이 밑까지 길고 붉고 오불고불한 상처 자국이 부풀어 있었다. 팔을 움직이거나 힘을 줄 때마다 그것은 다족류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그는 제 한 손바닥을 다른 손 주먹으로 퍽퍽 치고 나서 그 주먹의 불거진 정권 마디들을 턱에 문지르며 말했다.

- 역시 전국구 큰형님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야. 이 주먹도 이제 내 건가? 그렇지, 나 황 장 호 거지… 하지만, 우 갑 춘이 네게 미안하진 않아. 나도 내 몸 가로채이고 말이야, 할 수 없이 지금 네가 들어가 있는 그 늙은 몸에 들어가 있었잖니. 열 받아서 발광 하다가 징벌 먹방에도 여러 번 갔었어. 자살을 할래도 재갈 물고 뒷수정 찬 주제로는 어림도 없지 뭐니. 그러다 한번은 거기서 곰곰 생각을 해봤거든. 그랬더니 깨달음이 팍 오더라고.

그는 정말 깨달은 사람처럼 눈길을 내리깔고 한참이나 빙긋거렸다. 그대로 나직이 중얼댔다.

- 까짓 몸뚱어리 좀 바뀌는 게 무슨 대순가 말이야. 나도 낚시를 던져서 어느 놈이든 낙낙하고 쓸 만한 걸로 하나 낚아 올리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 나도 그놈 몸을 가로채 쓰자! … 달랑 한 몸 갖고 평생 사는 것도 지루하지, 뭐. 안 그러니?
그는 깨달은 체를 멈추고 벗은 몸 곳곳 근육에 한 번씩 힘을 주어보았다.  

- 녹이 좀 슬고 군데군데 땜질한 데가 징그럽긴 해도… 쯧, 이만하면 월척이야. 갑춘이 너도 그 늙은 몸뚱이에서 벗어날 수 있다니까는. 

2347은 하반신이 마비된 듯 떨다 주저앉았다.

우갑춘은 탕 속으로 뛰어들었다. 실리콘이 들어찬 그의 성기는 차가운 물속에서도 오그라들지 않았다.

 - 어허. 거 좋다. 여서 나가면 갑춘이 네 그 젊은 애인부터 한번……, 아니 참, 이젠 내 젊은 애인인가? 아직까진 좀 헷갈리

네.

고개를 수그린 2347이 무어라 반복해 웅얼거리다 말 마디마디에 맹세를 실어 단호하게 말했다. 

- 황장호 넌, 내 손에, 죽는다!

- 호오, 근데 어쩌니. 이 몸, 이 껍데기는 우갑춘인 걸. 네가 네 몸을 죽이면, 그럼 그건 자살이니, 살인이니? 이거 또 헷갈리네. 

2347이 고개를 들었다. 악물고 있던 어금니가 풀리자 입도 벌어졌다. 제발… 제발……. 그는 무릎으로 기어가서 상대의 발치에 얼굴을 비비며 울었다. 그런 2347의 작고 굽은 등을 한동안 내려다보던 우갑춘은, 아니 우갑춘 몸에 든 황장호는 조아린 2347의 등에다 바가지 물을 쏟아 부었다.

- 이거거든. 인생이란 원래 이런 거거든!

그는 큰 소리로 낄낄대었다. 그의 눈가에 물기가 비쳤다. 그는 흥얼대기 시작했다. 둥글게둥글게…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춥시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낮고 느리고 갈라진 목청의 동요. 2347은 목을 놓아 울었다. 기괴한 동요와 통곡소리가 목욕탕 실내를 함께 떠돌며 울렸다. 우갑춘은 노래 도입부,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춥시다’만 열 번도 넘게 반복해 부르다, 읊조리다, 멈추었다.   

- 이 노래 이거 명곡이더라. 갑춘이 너도 징벌방 같은 데서 한번 불러봐. 그냥 팍 꽂히는 게 있다니까는. 

2347이 울음을 그쳤다. 그는 말없이, 증오의 빛도 없이 빼앗긴 제 몸을 치어다보았다. 황장호가 들어있는 그 몸은 머리끝까지 탕에 담갔다가 솟구쳐 나와서는 두 손으로 어푸, 어푸 세수를 하며 말했다.

- 인간사…, 결국은,

물을 입안에 머금고 소리 내어 헹군 다음 멀리 뱉고 나서 그는 마저 말하였다.   

- 이 노래대로더라. 술래잡기라고.



*



우갑춘 출감 후 2347은 몇 날 몇 밤이고 눕지도 먹지도 않았다. 감방 구석에 쪼그려 앉아 꼭 한 마디 말만 끝없이 되풀이했다. 내가 우갑춘인데… 내가 우갑춘인데……. 말에 억양도 없고 멍한 표정이 한결 같아서 마치 망가진 인형 속에 내장된 녹음기가 일부 재생기능만 살아 제 혼자 돌아가는 것 같았다. 간혹 끊어진 주 전극이 잠시 이어진 듯 늙은 인형의 눈동자가 사납게 번득일 때도 있었다. 그 기색의 어느 어름엔가 처연한 빛이 지나기도 했다.  

같은 사방의 꽁지와 빠돌은 밤이면 교대로 2347을 살폈다. 그가 미친 기운으로 무슨 해코지를 할지 알 수 없어서 불침번을 서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소측에 전방 신청을 했지만 까탈 부리지 말라는 타박만 돌아온 참이었다. 

그러던 어느 새벽, 2347은 온 교도소가 떠나가도록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 울음은 개방 시간이 다 되도록 그치지 않았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던 꽁지가 오두발광 몸부림을 치다 일어나 앉았다. 벽에 기대앉아 번을 서던 빠돌은 아예 얼빠진 표정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2347이 고개를 돌려 꽁지와 빠돌을 번갈아 보았다. 그는 무릎걸음으로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 야, 꽁지. 빠돌! 나야, 나. 우 갑 춘!

2347은 한 손에 한 명씩 두 사람의 가슴팍 옷섶을 쥐고 당겼다. 자글자글한 그의 입에서 악취가 풍겼다. 빠돌이 손으로 제 입과 코를 가리고 꽁지를 돌아보았다. 꽁지가 2347의 두 손목을 동시에 비틀어 뿌리쳤다.

- 미친 영감아, 잠 좀 자자고!

그 실랑이 끝에 감방 한쪽 벽이 쿵쿵 울려왔다. 13방 너어들 죽을래! 내일  출역장에서 보자, 이 개에쉑들. 2347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일어나 말소리 난 쪽 벽을 두어 번 힘껏 쥐어박았다. 욱하는 성깔하며 주먹놀림은 거침없었지만 워낙 늙고 허한 몸이었다. 2347은 아픔을 못 이겨 두 주먹을 제 사타구니께에 쑤셔박고 웅크렸다. 꽁지가 모로 누우며 중얼댔다. 참…, 가지가지 한다.

- 뭐라?

2347이 꽁지의 등을 걷어찼다. 꽁지는 잠시 꿈쩍도 않고 누워있다 눈을 껌벅이며 느릿느릿 일어섰다. 한 손에 2347 멱살을 쥐고 주먹을 들어올리다 울상을 지었다.   

- 형, 그만해.

빠돌이 2347을 밀쳐서 꽁지에게서 떼어냈다. 2347은 순순히 떠밀렸다. 등이 벽에 닿자 빠돌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주저앉았다. 그는 양 무릎을 세워 그 위에 이마를 댄 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형광등이 꺼지지 않는 감방의 밤, 어두운 창살 너머에서 아기 옹알이 같은 길고양이 소리가 들려왔다. 차고 창백하고 아득한 소리다. 꽁지는 한쪽 팔로 눈을 가리고 설친 잠에 다시 빠져들었다. 그제는 빠돌도 모로 쓰러져 인상을 쓰며 구석에 이마를 박고 있었다. 짝짓기를 하는지 고양이들의 옹알이가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듯 다급한 비명으로 바뀌곤 했다.  
2347이 말했다. 

- 빠돌이, 꽁지. 늬들은 꿈이 뭐였냐? 난 꿈, 기막힌 거 하나 있었다. 기막힌 거…….
2347이 작고 낮게 흥얼대었다. 출감한 우갑춘이 자주 흥얼대던 노래였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제일하우스 락Jailhouse rock>. 우갑춘은 나이든 깡패치곤 그 빠른 영어 노래의 발음과 음정이 모두 제법이었지만, 2347은 단 한 마디 가사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그것은 노래가 아니라 흡사 기묘한 주문이었다. 

주문은 오래 반복되었다. 꽁지와 빠돌의 코고는 소리가 그 주문에 섞였다. 2347이 일어나 제 사물 보따리를 뒤적여 무언가를 꺼냈다. 주문이 떨렸다. 2347이 손에 쥔 것을 제 입으로 가져갔다. 주문이 멈추었다. 주문은 신음으로 바뀌었다. 2347은 제 목과 배를 움켜쥐고 뒹굴었다. 구르다 꽁지에게 몸이 닿자 그의 팔을 끌어안고 몸을 뒤챘다. 잠에 취해 눈도 못 뜨는 꽁지 앞에 2347이 고꾸라진 자세로 무어라 입을 오물거렸다. 그 입에서 피가 토해져 나왔다. 설깬 꽁지가 제 팔과 소매에 묻은 피를 보고 껌벅이며 어라?… 하다 놀라 일어났다. 그는 빠돌을 흔들어 깨웠다.

- 야, 야, 일어나봐. 영감이 이상해. 죽을라나봐.

- 잘 됐네. 

- 진짜라니까!

- 아, 그래서 지금 나더러 뭘……

빠돌이 꽁지 손을 뿌리치고 2347을 돌아보았다. 2347은 다시 입술을 달싹였다. 빠돌이 그 입에 귀를 갖다 댔다. 뭐, 비늘이 뭐?… 아, 바늘! 바늘을… 삼켜? 빠돌이 꽁지를 돌아보고, 꽁지는 급히 2347의 보따리를 뒤졌다. 맙소사… 없어, 하나도. 빠돌이 2347을 흔들며 말했다. 그 한 쌈을 다? 몽땅? 2347의 눈이 뒤집혔다. 으으, 이 징그런…… 빠돌은 2347 몸을 발로 떼밀며 물러났다. 꽁지가 출입문을 두들기며 시찰구에 대고 소리쳤다. 

- 담당님, 오담당님! 여기 영감 죽어요. 사람 살려!






2.



2347의 뱃속에서 나온 것은 바늘 12개만이 아니었다. 어른 가운뎃손가락 크기의 뭔가 두툼하고 긴 것이 있었는데 의무과의 방사선 촬영으로는 워낙 희미해서 잘 알아볼 수 없었다. 외부 병원 의사가 개복 수술을 마치고 보여준 그것은 부러진 칫솔대였다.  

2347은 지치지도 않았다. 마취에서 깨어나자 꿰매어 놓은 수술 부위를 쥐어뜯으며 다시 포악을 떨었다. 간호사가 하얀 옷과 얼굴에 핏방울 세례를 받고 비명을 질렀다. 늙은이의 악은 그 비명을 눌렀다.

내가 우갑춘이라구!

그는 입에 방성구(防聲具)를 물리고 사지를 병상에 묶였다. 시퍼렇게, 궁지에 몰린 짐승의 눈빛으로 그는 계호 나온 담당 교도관 오세인 교도와 김강준 교위를 쏘아보다 기진해 잠이 들었다. 김강준은 귀찮아 죽겠다는 듯 무어라 볼멘소리를 웅얼거리며 졸다 깨다 했다. 제복 모자를 눌러쓴 오세인은 2347과 관련된 예전 일을 곰곰 되짚고 있었다.

1년여 전, 발령 받은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초임근무 때 재소자들이 흔히 넥타이공장, 혹은 고만통이라 부르는 사형장 근처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은 종일 비가 내렸다. 계절은 가을이었지만 이따금 비바람이 몰고 오는 찬 기운은 겨울 한가운데 것이었다. 그 밤, 오세인은 예기치 않게 혼자서 순찰을 돌아야 했다. 야간순찰은 원래 2인1조로 하지만 그날은 김강준 교위가 집안의 궂은 일로 급히 조퇴를 하는 바람에 외돌토리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하필 비도 오는데…, 다른 조 사람들한테 아쉬운 소리 하는 것도 그렇고…….  그는 머뭇대다 혼자 우비를 입고 나섰다.

일반사동 건물 뒤 후미진 구석에서 어둠과 비에 젖어 그 외형이 흐려져 보이는 콘크리트 단층 건물은 다가가기 뜨악했다. 그곳은 목을 옭힌 사형수들이 달랑달랑 숨을 거두는 지하실과 1층의 형장, 그리고 시체 안치실로 건물 구성이 되어있었다. 거기 처음 갔던 날 보았던 올가미 밧줄 생각이 났다. 김강준이 일부러 찾아서 보여주며 그 올가미의 아랫부분을 톡톡 쳤었다. 여기, 여기가 포인트야. 다른 데보다 더 뺀질뺀질하지? 한번 만져봐. 김강준은 오세인의 손을 잡아 반강제로 올가미 아랫부분에 문지르려다 짓궂게 웃으며 놓아주었다. 이게 뭐냐, 역대 넥타이 주인들 모가지 기름때거든. 1층 바닥이 쿵, 소리와 함께 꺼지고 용수를 뒤집어 쓴 사형수가 별안간 떨어지면 그의 목젖이 온몸 하중을 싣고 그 지점에 걸린다는 거였다. 형 집행 직후엔 이미 죽은 몸인데도 그 직전까지의 공포와 충격 때문인지 시신이 한동안 경련을 한다고도 했다. 김강준은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손가락들을 갈퀴 모양으로 펴서 오세인을 덮치는 시늉을 한 채 말했다. 지하실엔 온갖 잡귀가 득시글대다가 그렇게 막 죽은 따끈따끈한 몸에 일단 들어간다는구먼. 그랬다가 산 사람 중에 누구든 저거 만만한 놈이다 싶으면 다시 옮아붙는대.

이렇게, 우왕! 

오세인은 새삼 오싹해지는 스스로가 못마땅하고 우스웠다. 손전등 배터리가 다 됐는지 불빛이 몹시 흐렸다.

그냥 돌아갈까?

그는 잠시 망설이다 이내 사형장 쪽으로 보폭 넓게 걸음을 내디뎠다. 빗물 흙탕에 구둣발이 빠져도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몇 걸음쯤 걸었을까, 손전등 불빛이 뚝 끊겼다. 오싹 한기가 일었다. 에라, 차라리 잘 됐네. 손전등 없인 순찰 못 돌지. 그는 한쪽 손으로 입가를 문지르며 돌아섰다. 어둠 속에서 사형장 건물을 등지자 무섬증이 왈칵 온몸을 덮쳐왔다. 그때 눈앞에서 섬광이 번뜩했다. 그 뒤를 이은 천둥소리와 함께 무언가, 차갑고 기분 나쁜 갑각류 껍데기 같은 것이 오세인의 왼쪽 눈을 때리며 들러붙었다. 느낌에 그것은 사람의 조막손 모양인 것 같았다. 그는 반사적으로 눈자위에 붙은 것을 떼어내어 저도 모르게 움켜쥐고 뛰다시피 걸었다. 뛰면 창피하니까. 다시 섬광과 거의 동시에 콰르릉 쾅! 하는 소리. 바로 그때, 그 두 번째 천둥소리 직후 그는 분명히 들었다. 크하하하학! 하는 사내의 난폭한 웃음소리.

이건 환청이야. 뭔가 잘못된 거야.

체머리를 흔들며 그는 달렸다. 얕은 물웅덩이에 걸려 나뒹굴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손전등은 어디다 떨어뜨렸는지 없고,

왼쪽 손 안엔 은행잎이 하나 으깨져 있었다.

그 다음 날 아침까지 가을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엔 볼만했어요.

2347영감이 제 감방 시찰구 반대편으로 고개를 꼬고 앉아 심드렁하게 말했다. 음성은 갈라지고 탁했지만 거기서 나오는 말투는 얌전하달까, 가만가만한 여자 흉내를 내는 것 같았다.

오세인이 말했다.

뭐 말이요?

약 좀 해 자셔야겠던데. 혈허요, 혈허. 그러니 그렇게 겁이 많지.

그 말하려고 불렀나, 아침부터?

혈허엔 녹용이 군약이에요. 그거 가미해서 육공단 만들어 드셔. 아 왜 담력 센 사람보고 강심장이라잖우. 혈기 왕성하다고도 하고. 그거 다 근거 없는 소리가 아니라니까는.

오세인은 잠자코 있었다. 우갑춘이 끼어들었다.

시치미 뗄 거요? 아, 고만통 말야! 이 영감님이 그러는데 은행잎은 몸에 좋은 거랍디다.

2347과 우갑춘은 저희끼리 눈을 맞추고 쿡쿡 웃었다.

저치들 한번 파봐야겠는 걸. 오세인은 이렇게 단단히 마음먹고 돌아섰지만 24시간 맞교대의 고만고만한 소내 업무에 쫓기다 그 일의 심각성이랄까 칙칙한 불쾌감은 닳아 없어지고 말았다. 천둥 직후 들었던 사내의 거친 웃음소리도 시일이 갈수록 그게 환청이었을 거라는, 환청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굳어지면서 스스로에게 더 머쓱해졌다.



2347의 억지와 난동은 나름의 주기랄까 발작 시기가 있었다. 같은 사방에서 친하게 지내던 재소자의 출감 전후가 바로 그런 때였다. 우갑춘 출감 전후뿐 아니라 그 이전, 교도소에서 흔히 ‘물총’으로 통하는 강간범 황장호가 나갈 즈음에도 2347은 자기가 황장호라고 우겼다. 이물질 취식 난동이 일어난 우갑춘 때 건과 달랐던 점은 자기가 왜 황장호인지, 그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들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그랬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횡설수설을 들어줄 사람이 교도소 안에 있을 리 만무였다. 2347은 거칠고 악착스러워졌다.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며 자고 있는 동료 재소자 귀를 물어뜯는가 하면, 교도관들에게 제 오물을 뿌리기도 했다. 

암만 웃기는 꼴통도 그렇게 자꾸 부리다보면 문리가 트이는 건지, 중구금실을 들락거리며 한 달 두 달 세월이 가면서 차츰 미친 억지가 가라앉자 2347은 제가 바로 그라는 황장호처럼 침술사 푼수를 보이기 시작했다. 동료 재소자들의 진맥을 짚고 지압할 혈자리를 알려주다 마음 내키면 돌침을 놓아주기도 했다. 뾰족한 자갈 모서리로 환자 혈자리를 꾹꾹 눌러 주는 걸 갖고 재소자들은 돌침이라 했는데 그 효과가 제법이었던 모양이다.

2347의 침 솜씨 소문이 돌자 우갑춘이 독거사동에서 전방을 왔다. 이봐, 영감. 당신 이제부터 내 주치의 해. 내 요즘 대가리 뼉따구부터 발가락 무좀 끝까지 편한 데가 없다. 국내산 몸뚱이를 너무 함부로 써먹었어. 침은 내 제대로 구해준다.

그때부터 2347은 지압과 침으로 우갑춘의 목 디스크 치료와 매일의 건강진단, 컨디션 조절에 전념했다. 지압은 손가락 힘이 달려 직접 할 수 없었으므로 저는 혈자리를 짚어 알려주고 꽁지와 빠돌에게 대신 누르도록 했다.

우갑춘의 장담대로 침은 교도소에서 구할 수 있는 깜냥으로는 제대로 된 것이었다. 그의 다른 방 아우들이 옷 꿰맨다고 교도관에게 빌렸다가 빼돌린 바늘에다, 깡통 뚜껑을 정교하게 오리고 갈아서 만든 것까지 모두 12개의 침을 놀릴 수 있었다. 시술뿐 아니라 침 소독과 보관까지 2347 일이어서 끓는 물 부탁한 봉사원 진맥해주랴, 교도관 눈치 살피랴 신경이 여간 쓰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2347은 표정이 밝아져 있었다. 꽁지와 빠돌만 죽을 맛이었다고 했다.


오세인은 병원 계호교대를 하고 들어오자마자 그 두 사람을 면담실로 불러 물었다.

- 당신들이 죽을 맛이었을 건 또 뭐요?

꽁지가 말했다.

- 담당님. 건달징역 알지요? 징역 안에서 건달한테 또 징역 사는 거. 징역생활 막장! 빵살이 진짜 더럽게 꼬이는 게 그건데, 우리야말로 그걸…, 으으, 말도 안 나오네.

꽁지는 두어 번 맨 입맛을 다시고 나서 말을 이었다.

- 그러니까 그게, 개갑춘이 하고 그 영감하고 둘이 좀…, 뭐래야 되냐 이거… 하여간 괴상망측한 데가 있었다는 거, 응? 매일 밤마다 갑춘이가 웃통 까고 엎드리면 영감이 침 놓아준 건 놓아준 건데, 한 대여섯 달 전부턴 그러고 나면 두 놈이 꼭 나란히 눕는 거라. 아니 참, 그때쯤부턴 침도 안 놓았던가?

빠돌이 말했다.

- 처음에 난 그 둘이 그렇게 누워서 하도 꼼지락 소리도 없길래 슬그머니 뒤돌아 본 적이 있어요. 두 사람 다 죽었나 싶기도 하고, 막 궁금하잖아요.  

빠돌의 그 궁금증은 곧바로 재앙을 불러왔다. 꽁지 말로는 그날 새벽 우갑춘의 ‘액션’이 펼쳐졌고 그 액션 아래 빠돌의 곡소리 나는 피춤 장단과 ‘떡실신’이 이어졌다고 한다. 우갑춘이 영감에게 침 시술을 받게 되면 꽁지와 빠돌은 자동으로 무릎을 꿇고 돌아앉아서 이제 됐다고 할 때까지 숨소리도 크게 내지 말아야 했다는 것이다. 부를 때까지 부동자세, 부동자세! 가끔은 개방시간 직전까지 꼬박 날밤을 새운 적도 있었는데, 더 미치는 건 우갑춘이나 영감이나 죽은 듯이 눈 감고 있었는데도 돌아앉은 그들의 표정이나 욕지거리 입 모양새까지 본 듯이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그날 우갑춘에게 두들겨 맞을 때도 빠돌은 우악스런 주먹 매보다 그 사실이 더 무서웠고, 무섬증보다 궁금증이 더했다.   
빠돌이 생각에 잠겨 말했다

- 어쩌면… 저 영감은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나 무슨 도깨비 같은 건지도 몰라요.

돌의 말에 꽁지가 뭐라 핀잔을 주려다가 잠시 눈을 껌벅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마른 콧물을 소리 나게 돋워 삼켰다. 그가 입속말로 읊조려대는 욕지거리 몇 마디만 잠시 면담실 탁자 위를 떠돌았다.

빠돌이 말했다.

- 예전에 물총 함부로 쏘다 사람까지 둘이나 담그고 여기 온 놈이 있었거든요. 황장호라고, 무허가 침쟁이였는데…… 여기 애들한텐 다 황박사로 통했어요. 침 놔 주니까.

오세인이 손을 까닥여 그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빤히 바라보았다. 빠돌은 잠시 의아해 하다 목례를 하며 말했다.

- 비속어, 죄송합니다.

꽁지가 살살 눈동자를 굴리며 그런 두 사람 간 분위기와 기색을 살피다 한쪽 눈을 가늘게 뜨고 두어 번 콧김을 내쏘았다.
빠돌이 말했다.

- 황장호 그 인간, 강간살인으로 명찰은 뻘게 갖고 하는 짓에다 말투는 꼭 계집애 같았거든요. 웃음도 어떻게 ‘이히히히’, 이상하게 웃고. 근데 그치 나간 다음부턴 저 괴물 영감이 그렇게 웃는 거예요. 말투도 비슷하고. 그러더니 우갑춘이 나간 다음부턴 또 싹 바뀌어서는 ‘크하하하악’, 이러고…….

오세인은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톡, 치고 있었다.

- 아무튼, 2347이 왜 저러는지 당신들도 모른다?

꽁지가 갑자기 소리를 높였다.

- 아, 모르지! 모르니까 더 으스스하고 께름칙해. 보슈, 나으리. 우리 말이지, 인류애적 차원으로다가 우리든 저 영감탱이든 제발 전방 좀 시켜주쇼. 도대체가 저런 영원한 중점시찰대상자에다 혼거불능자를 왜 우리 같이 멀쩡한 사람들하고 두냔 말이지. 특별 관리를 해야할 거 아니냐고. 암만 빵살이 꿀림방이라도 수감자가 마음을 놓고 살아야 당신네들도 선진 교정행정을 구현하든지 십현하든지 할 거 아니냐 이 말이지. 니미, 빨리 전방 안 시키면 이번엔 내가 아예 식칼을 칵 처먹고 말 거라는 거, 응? 아님 내 눈깔을 홀랑 꿰매버리든지. 그도 저도 아니면 교도관 직무유기로 고소에다가, 청와대 진정, 법무부장관 청원, 다 해버려. 내가 못할 것 같…, 어우욱!

빠돌이 팔꿈치로 제 지껄임에 취한 꽁지의 옆구리를 냅다 질러서 그 흥과 말을 끊었다. 근데 이 자식이… 꽁지가 돌아보자 빠돌이 턱으로 출입문 쪽을 가리켰다. 그 턱짓을 따라 고개를 돌린 꽁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재소자들 사이에서 ‘깡돗개’로 통하는 김강준 교위가 실실 웃으며 상담실로 들어섰다. 그는 한 보루나 되는 담배와 라이터, 칫솔대를 깎고 갈아서 만든 한 뼘 길이 플라스틱 칼 등속을 들고 있었다.

오세인이 말했다.

- 뭐 좀 나왔어요?

- 이거야. 쟤들 강아지만 한 보루 파 왔어. 꼴통 영감 건 쥐뿔도 없던데.

김강준은 꽁지네 앞에 버티고 서서 이를 드러내고 성난 개소리를 냈다. 크르르르……. 재소자들에게 겁을 주거나 화가 났을 때, 말 그대로 개처럼 나오는 버릇이었다. 얼굴의 좌우 대칭이 정확하고 치열이 골라서 그럴 땐 영락없이 사나운 진돗개 같았다. 헌병 출신답게 다리도 곧고 길었다. 그는 우선 꽁지와 빠돌의 눈앞에 수거물품들을 디밀고 샛눈을 떴다. 칼은 탁자에다 소리 나게 팽개쳤다. 담배는 보루 포장을 뜯고 푹 수그린 그들 뒤통수에 한 갑 한 갑 차례로 떨구었다. 꽁지가 이거 다 우갑춘이 나갈 때 준 거라고, 안 받을 수도 없었다고 하다, 하여튼 그 깡패 놈 땜에…, 하며 눈치껏 분을 내었다. 김강준이 그의 도톰한 볼살을 쥐고 흔들었다.

- 얘 오발탄 두꺼운 거 좀 봐라. 저 칼은? 저건 또 네 짓이잖아. 그렇지? 

- 그거도 갑춘이가 만들어 달라고… 

김강준은 꽁지의 볼살을 놓고 칫솔대 칼을 집어 들어 요모조모 살피다 감탄을 하며 오세인을 돌아보았다.

- 이거 진짜 명검 같지 않냐.  

그는  칼을 세워 쥐고 천천히 치켜들었다. 꽁지가 두 팔로 제 머리통을 감쌌다. 김강준이 말했다.

- 이번이 벌써 몇 번째? 이걸 그냥 확…!

꽁지가 더 깊이 웅크리고 수그렸다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잘못했습니다, 죽을죄를 졌습니다, 하며 가슴 앞으로 두 손을 모아 비벼대었다. 김강준이 콧김을 섞어 웃자 꽁지도 헤헷…, 따라 웃었다. 웃음과 함께 그의 위 잇몸과 검누런 앞니 두 개가 입술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런 꽁지를 희끗 할기고 고개를 돌린 빠돌의 두 주먹과 어금니엔 자기도 모른 새 힘이 들어가 있었다. 김강준의 한쪽 눈가에 언뜻 주름이 잡혔다. 그의 시야 가장자리에 아기똥한 빠돌 모습이 걸려있었다.

오세인이 말했다.

- 면담 중에 검방까지 해서 미안한데, 솔직히 말 좀 해보자고요. 이런 거 말고 다른 거 뭐 없나? 2347이나 우갑춘이 잘 갖고 놀던 거라든지 하다못해 무슨 낙서 같은 거라도.

빠돌이 말했다.

- 꽁지 너, 생각나는 거 좀 있냐?

꽁지가 못들을 걸 들은 양 하, 작게 한숨을 토하며 빠돌에게 고개를 틀려다 가 다시 조아렸다. 김강준의 눈매가 샐쭉 올라가 있었던 것이다.

- 무조건! 무조건 생각나는 거 있어야 되는 거야. 꽁지, 알아 몰라?

- 예? 예…….

말끝에 꽁지가 빠돌을 흘낏 돌아보았다. 빠돌은 앞만 보고 있었다. 광대뼈 아래 움푹한 볼과 턱선이 강팔져 보였다. 김강준은 꽁지에게만 시선을 꽂았다. 

- 빨리 생각 안 나지?

김강준이 칼을 들어올렸다. 꽁지가 다시 머리를 싸안고 움츠렸다. 목덜미 살이 토실하다. 그 살을 김강준이 칼끝으로 콕콕 찔렀다. 꽁지는 숫제 어리광을 피웠다. 으이이잉…….

빠돌이 말했다.    

- 저기, 그 둘이 종종 함께 보던 책이 한 권 있었는데요.

지금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고 하자 김강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야, 꽁지!

- 예에? 아니 왜 나만 갖고…….

- 그 책 찾아놔.

꽁지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 알아, 몰라!

김강준이 꽁지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꽁지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내려와 쪼그렸다. 연이어 김강준이 더 세게, 연속으로 걷어찬 건 빠돌의 정강이였다.

한 대, 두 대, 세 대.

빠돌은 의자에 앉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를 꼭 물고 신음소리도 내지 않았다. 김강준은 빠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멋있네. 근데,

그러고는 왼손으로 빠돌의 뒷덜미를 꽉 움켜쥐고 오른 무릎으로 명치를 올려 찍었다. 빠돌이 허리를 꺾으며 쓰러졌다. 그는 반사적으로 나오는 비명도 삼켰지만, 갑자기 막힌 숨을 틔우느라 몸부림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김강준이 말했다.

- 멋 부리다 죽는 수가 있어. 책 찾아놔.

그리고 꽁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서 쪼그리고 있던 꽁지가 황급히 자세를 고쳐 무릎을 꿇었다. 그 무릎 위로 김강준이 한쪽 발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꽁지는 제 눈앞에까지 올라온 구둣발을 두 손으로 품에 얼른 감싸 안고서 기도하듯 말했다.

- 차, 찾겠습니다. 예, 그럼요. 예!

김강준은 득의만면, 입가에 슬쩍 웃음을 머금었다. 오세인과 눈길이 마주치자 조금 쑥스러운 듯했다.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고 나서, 여전히 제 한쪽 발을 품고 있는 꽁지를 그 발로 밀쳤다.

오세인은 김강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선웃음을 흘렸다. 나 죄수 아닌 게, 저 사람 동료인 게 다행이다 싶었다. 
  사방으로 돌아오자 꽁지는 안절부절, 자리에 한번 앉을 새도 없이 매트리스와 모포더미를 헤비고, 고무신 올려놓는 선반을 까치발로 살폈다. 빠돌은 몇몇 권 쌓아놓은 무협지와 잡지 뭉치를 베고 누웠다. 꽁지가 마른 콧물을 소리 나게 돋워 삼키며 빠돌의 엉덩이를 툭툭 건드렸다.

- 야, 네가 아까 몇 대 줘터진 건 알겠지만… 아까부터 너, 싸가지 이러면 안 되지.

그 소리에 빠돌이 눈을 한번 크게 부릅떴다가 다시 감았다. 꽁지는 눈을 치뜨고 괜스레 감방 천장을 휘둘러보았다. 

- 야, 빠돌아. 내 좋은 말 하는데, 우리끼리 이러지 말자.

- 우리? 너 지금 우리라 그랬냐?

빠돌이 눈을 떴다. 꽁지는 한쪽 주먹의 정권 마디들을 한꺼번에 우두둑, 꺾고 나서 말했다. 

- 죽을래? 

빠돌이 코웃음을 치다 발을 구르며 벌떡 일어섰다. 한 손가락을 들어 제 가슴께를 가리키고, 

- 나하고

그 손가락 끝을 돌려 꽁지의 이마를 짚고 나서,

- 너하고

손가락에 힘을 주어 쿡쿡 밀다가,

- 우리다, 우리. 이런!

빠돌은 따귀를 갈기듯 꽁지의 얼굴을 세게 밀어버렸다. 벽에 뒷머리를 부딪친 꽁지가 눈을 부라리다 야아, 형한테 장난이 좀…, 하며 히죽 웃었다. 누런 앞니 두 개가 평소보다 더 벌어져 보였다.

빠돌이 말했다.

- 꿇어.

- 뭐? … 뭘 끓여?

꽁지는 제 귀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잘 알아듣지 못한 눈치였다. 빠돌이 정면으로 한 발 다가섰다.

- 꿇어.

꽁지가 마주 쏘아보다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그는 뭔가를 깊이 이해한다는 듯, 그런 너그러운 표정과 음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그래, 사람이 말이지, 친형제 간에도 수틀리면 싸우고 대들고 그럴 수 있는 거지. 우리가 여기서 한 식구로 먹고 잔 게, 그게 벌써 얼마냐. 하지만, 우리는 또 이게…… 의리, 의리생의리사라는 거, 그거 아니면 시체라는 거, 응?

빠돌은 고금의 진리라도 듣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다 제 오른손 주먹등을 내밀고 그 가운뎃손가락을 위로 펼쳐 세웠다. 그것을 꽁지의 입에 가져다 대고 느릿하게 속삭였다. 빠아아…큐우우.  

꽁지의 주먹이 날았다. 빠돌은 피하지 않았다. 꼿꼿이 고개 들어 목에 힘을 주고 그 주먹을 맞았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잇몸과 이에 피가 묻어있었다. 그는 입 안의 피를 꽁지의 얼굴에 뿜었다. 

- 꿇어.

꽁지가 뒷걸음쳤다. 얼굴에 분무된 피는 닦지도 못했다. 빠돌이 따라 갔다.

- 셋 센다. 하나!

꽁지가 이번엔 몸을 날렸다. 체중이 실린 그의 발길이 빠돌의 명치께를 가격하였다. 빠돌은 몸을 접고 쓰러지면서도 비명을 삼켰다. 두 손을 바닥에 짚자마자 몸을 튕기듯 일어났고, 일어난 서슬 그대로 꽁지의 이마에 제 이마를 들이대었다.

- 두울!

- ……

꽁지가, 으으, 고개를 저으며 물러섰다. 빠돌이 말했다.

- 나 예전에 개갑춘이한테 개기고 삐딱선 타다가 어떻게 됐는지 너도 봤잖아. 어금니 하나 생으로 뽑힌 거. 난 한 개로 안 끝내. 자, 넷은 없어. 세에에에…

꽁지가 황급히 소리를 질렀다.

- 아아안! 안 꿇으면… 안 될까?

- 대가리 박아라.

- 안 박으면

- 안 돼.

꽁지가 마룻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뒷짐을 진 채 바닥에 앞머리와 양 발끝만 대고 엉덩이를 높여 버티는 자세. 빠돌이 말했다.

- 애당초에 갑춘이가 시키니까 내 너한테 형님 한 거지만, 그 자식 출감했다 그래도 이럴 맘까진 없었어. 근데 볼수록 아닌 걸 어떡하냐고. 세상사 아무리 서열이라지만 어떻게 너 같은 인간똥개가 다 있냐.  

빠돌이 한쪽 발을 차올렸다가 그 뒤꿈치로 엎어진 놈의 등을 내리찍었다. 커윽! 꽁지가 무너져 몸을 뒤챘다. 빠돌은 한편에 몰아놓은 담요더미 위에 벌렁 기대 누웠다.

- 에휴, 멋진 새끼. 네가 그래도 나한테 무릎을 꿇진 않았잖아. 자, 그만. 그만 겔겔대고 일어나. 기상!
꽁지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자위가 붉게 젖어있었다. 목울대에서 억눌린 울음소리가 비어져 나왔다. 빠돌은 뭔가 허탈한 듯 콧김을 내쉬며 말했다.

- 뭐 하냐, 책 찾아야지. 

꽁지가 마룻바닥과 벽의 갈라진 틈새, 창틀을 다시 살폈다.

- 뼁끼통은 안 찾고?

꽁지가 변기통까지 뒤지고 나자 빠돌이 제 바지춤에서 책을 꺼내었다.

- 이런, 이게 언제 여기 들어가 있었어, 그래.

빠돌은 일어나서 시찰구에 대고 소리쳤다.

- 김주임님. 오담당님.

그 소리에는 부드러운 비음(鼻音)이 섞여 있었다.

꽁지는 이제야말로 정말 잘 드는 명검을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3.



그것은 책이라기보다 작고 얄팍한 유인물 뭉치에 더 가까워 보였다. 세로쓰기로 등사 인쇄되어 있고, 앞 뒤 표지가 뜯겨져 나가 제목조차 알 수 없었다. 본문 쪽들은 벌레 으깨져 죽은 자국과 군데군데 구정물 마른 자리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깨알만한 글씨는 워낙 흐려서, 돋보기 없이 보려면 미간과 눈가가 절로 찡그려졌다. 

오세인은 휴게실 탁자 위에 책을 내려놓고 눈을 비비며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먼빛 노을 자투리가 2347, 그 악바리 영감 눈에 뻗쳐있던 핏발 같다. 책을 건네주던 빠돌의 말이 생각났다. 근데요, 이거 진짜 귀신 붙은 건지도 몰라요.

오세인은 총무과 사무실로 향했다. 교도관 생활 얼추 30년 가까이 돼가는  까마득한 고참, 수용기록계장이라면 2347에 대해 엔간히는 알고 있을 것이었다. 나이가 대충 얼마고 어느 지방 출신에, 무슨 일을 저질렀던지 정도는. 계장이 모른다 해도 신분장을 찾아보면 알 수 있을 것이었다. 한데, 아니었다.

- 신분장? 그 영감 거? 그런 거 없어.

오세인은 뻥해져서 눈을 껌벅였다. 신분장 없는 재소자라는 게… 그럴 수도 있나? 신분장이란 한 마디로 수감자 개개인의 범죄 내력서다. 그 서류철만 펼치면 주민번호 등의 기본 인적사항과 주 범법행위는 물론이고 입소심사 소견이니 항소이유서, 하다못해 심문받을 때 머리 굴려 썼던 반성문까지, 한 범죄자로서의 온갖 행적과 ‘족보’가 다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분장 없는 재소자’는 재소자일 수가 없는, 일종의 형용모순과 같은 말이었다.  

수기계장이 말했다.  

- 그 영감 건 없다니까. 내가 샅샅이 찾아봤어. 예전에 내 전임자한테도 물어보고. 그 양반 얘기가, 그러니까… 나 들어오기 훨씬 전이라니까…… 아무튼 그때 여기 무기수 한 놈하고 사형수가 난동 부리다 불을 낸 적이 있다는구먼. 그때 불타 없어졌을 거라나. 아니, 참. 그게 아니라 그 영감 건 애초부터 없었다고 그랬던가? 아무튼 그랬어.

- 그럼 새로 안 만들었나요?

- 그런 걸 누가 신경 써. 어차피 여기서 죽어야 나갈 텐데. 요즘은 제가 또 누구라고 그러나?

- 우갑춘이랍니다.

- 그거… 노망주기가 또 왔구먼. 

2347은 ‘개선극란’에서 ‘개선곤란’으로, 거기서 다시 ‘개선가능’으로 분류 향상이 돼가다가도 같은 방의 친한 재소자가 나가고 나면 제가 바로 그라며 온갖 난동을 다 부려서 다시 개선극란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전체 재소자 100  명 중 한두 명 꼴로 분류되는 개선극란자. 옆에서 오래 지켜본 사람 입장에서 가끔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도 있었을 텐데 수기계장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그는 살 없고 혈색 안 좋은 얼굴에 지나치게 큰 듯한 눈이, 게다가 튀어나와 있어서 어딘지 아주 딱딱하게 오래 말린 북어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래도 눈매가 부드럽게 쳐져있어서 그렁저렁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보이긴 했다. 그는 오래된 인조가죽 소파의 보풀을 하나 하나 잡아 뜯으며 말했다. 

- 불길해. 저 늙은이 저거, 뭔가… 뭔가……. 몇 년 전까지는 말이야, 우리 회사에 해마다 연말 세족식이란 게 있었어.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교도관들이 재소자 한 놈씩 파트너 먹고서 발을 씻어 주는 건데, 교도관이 무슨 예수야, 뭐야. 교회 성가대 같은 데서 떡 갖다 주면 그거나 한 입씩 우겨 넣으면 됐지. 안 그래? 지금은 소장 바뀌면서부터 안 하고 있지만, 아무튼 그 웃기는 세족식에서 저 영감탱이 발 씻어준 게 내 입사동기 놈이었는데, 사람 참 괜찮았거든? 근데 정신병원에 강제로 처박히고 말았어. 저 영감하고 친해지고 나서부터 애가 이상해졌거든. 자꾸 헛소리를 해대고.

- 뭐라 그랬는데요?

계장이 버럭 언성을 높였다.

- 인마, 내가 미쳤다고 그런 걸 지금까지……

하다가 히죽 웃었다. 그는 한숨을 섞어 나직나직 중얼거렸다.
 - 이럴 시간 있으면 형소법 한 줄이라도 더 들여다봐라. 승진해야지. 계속 그냥 꼬래비 닭발 신세로 살래? 그렇게 한 30년 지

나고 나면 딱 내 꼴 된다니까.

나이든 선배 교도관들은 까마득한 말단 후배들 – 교사나 교도를 흔히 닭발이라고 했다. 그들의 옛날 계급장 모양이 지금과 달리 세 갈래 닭발처럼 생겨서 그때부터 붙은 별칭인데, 오세인은 닭발이 닭 머리 꼭대기의 ‘벼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부위라 조직 말단들을 그렇게 부르나보다 했었다. 언뜻 그럴싸해 보였지만 얼토당토않은 추측이었다. 교도소는 그런 빈약한 상상력조차 기대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오세인은 괜스레 뒷머리나 긁적이다 싱긋 웃었다. 계장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 저저, 웃는 거 봐라, 애처럼. 캐비닛 열쇠 줘? 신분장, 영감 거 있나 없나 밤새면서 한번 찾아볼래?

오세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또 싱긋 웃었다. 한 손에 말아쥐고 있던 그 ‘귀신 붙은’ 책을 그는 새삼 찬찬히 매만졌다.






4.



‘그것은 상상도 아니요, 꿈도 아니며 엄연한 이 세상 일이었다……’로 시작하는 고색창연한 머리글을 읽고 오세인은 일단 책장을 덮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하도 힘을 주고 들여다봐서 그런지 매듭지어진 글 한 대목의 마지막 어구, ‘……혼육분리의 묘와 술을 설하여 놓다’까지 읽고 나자 눈앞이 다 침침해졌다. 몇몇 글자와 문장은 끝내 알아볼 수 없었다. 워낙 헐고 낡은 종잇장이 더 이상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나마 이만큼 읽은 것도 돋보기를 들이대고 암호 해독하듯 단어를 추리한 결과였다.

오세인은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를 꺼내어 몇 모금 마시고 자취방의 1인용 비닐소파에 상체를 묻었다. 혼육분리라……. 그건 아마 요새 말로 유체이탈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그런 거라면 ‘믿거나 말거나’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몇 번인가 보고들은 적이 있다. 그는 책 페이지를 두서없이 뒤적이다 한 면에서 주춤 손길을 멈추었다.


혼육분리의 술(術)
 

……의념은 그 자체가 한 세계임을 알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특정한 시공과 인물과 사물을 의념할 수 있는 생래의 능력을 득(得)하고 있으매, 이것이 바로 일언지하 혼육분리술의 요체라 하겠다.

혼육분리에 닿는 길은 여러 갈래이나, 대저 사모하고 애타하는 이를 그리는 것이 효과적이다. 님을 정하였으면 애오라지 몰입하라. 잠들기 직전이나 잠에서 막 깨어난 시각, 혹은 낙일(落日) 속 정좌도 쾌하다. 세상사 발버둥이에서 한마음 물러나 호흡을 고르고 님의 생생한 이목구비와 발끝 췌육(贅肉)의 형상까지, 그 살 만질 때의 감흥과 감촉, 내음새까지도 기억하고 의념하라. 그럴만한 님이 없다면 가고픈 장소를 한가롭게, 허나 사무치게 떠올리라. 이때에 귀를 편히 할 가락이 있다면 한층 녹록할 터. 나는 밤새를 벗하여 그 소리와 동좌하였나니.

이 신묘한 술을 펼칠시 각별히 경계해야할 한 가지는, 실은 이나 실은 곳이 무심결에 떠올라 그것이 가장 강고한 의념이 되는 수도 있다는 거시다. 그리되면 이탈한 혼이 제 절로 실은 이에게 가있고, 실은 곳에 당도해 있게 되나니 이 어찌 불쾌치 안으리. 술이 제 길에 펼쳐지면 육신이 저리며 진동이 오리라. 허나 저어하지 말 일이다. 저어하는 마음은 혼육분리의 마구니이니. 다만 의념하라. 혼이여. 내 안의 진아(眞我)여. 떠오르라, 떠오르라, 그리로 가리니, 그리로 가리니.

오세인은 손목을 튕겨서 책을 방바닥 아무데나 던져 버렸다. 웃음이 나왔다.

한때는 그도 초현실적인 현상이나 존재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아내가, 아니 아내였던 여자가 아내일 때 앓던 기묘한 병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주 고열과 두통에 시달렸지만 병원에선 별다른 이상을 찾지 못했다. 열이 내리면 그 직후 아내는 우선 입맛을 소리 내어 다셨고, 얼굴에 붉은 벽돌색 때깔이 돌면서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대기 시작했다. 그녀의 그 중얼거림에는 때로 욕설이 반복되기도 했고, 어느 땐 주변 사람들에 대한 예지의 말도 섞여 나왔다. 무병이네, 신내림이네, 말들이 나와서 용하다는 무당들 수소문도 해봤지만 막상 어디의 누가 큰무당이라더라 하면, 또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나 싶어졌다. 그렇게 차일피일 치료인지 푸닥거리인지를 미루고 망설이다 영 주저앉아 버렸다. 세상엔 역시 눈에 보이는 세계만 있는 건 아닌가 보구나 하는, 물질성 너머에 대한 어섯눈만 설핏 뜨이다 말았다.  

오세인은 남은 맥주를 비우고 그 깡통을 구겨 쓰레기통 쪽으로 던졌다. 아침부터 종일 자고 일어난 저녁 잔입이라 살짝 취기가 돌았다. 그는 담배를 피워 물고 오디오 전원을 넣었다.

늘 같은 CD가 부속품처럼 디스크 트레이에 얹혀있다. 우울한 음조의 팝송 모음 음반. 아내가 음원 사이트와 앱을 뒤져 직접 녹음한 것이다. 영국 그룹 포티쉐드(Portishead)의 '글로리 박스(Glory Box)'가 첫 곡이다. 오세인은 그 첫 트랙에 반복 기능을 걸고 눈을 감았다.

틱틱, 하는 특유의 디제잉 잡음과 함께 신시사이저의 느릿하고 몽롱한 전주가 여덟 평 반지하 방의 곰팡이 냄새와 담배연기 속으로 퍼졌다. 비음과 허스키가 교묘히 섞인 베스 기븐스(Bath Gibbons)의 보컬이 읊조리듯 흘러나왔다.



I'm so tired, of playing

나는 정말 지쳤어. 

Playing with this bow and arrow

이 활과 화살을 갖고 하는 놀이에

……



길게 타들어간 담뱃재가 꺾여 떨어졌다. 일부러 집중해 의념이란 걸 하지 않아도 조용한 시간에 이 노래를 들으면 으레 떠오르는 사람, 아내. 이젠 아내가 아닌 전처.

그녀의 그 선뜩한 병은 산부인과 수술을 받고 나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가 아랫도리를 벌리고 누워 하혈을 하는 모습이 본 듯이 그려지곤 했다. 그런 땐 찢어진 웨딩드레스 조각들이 잘게 으깨지고 붉은 싸락눈이 땅에 앉지도 구르지도, 하늘로 치솟지도 못한 채 허공에서 저마다 몸부림치는 환영이 떠오른다. 그녀가 담담히 말했다. 아기를 길거리에 나앉아서 낳을 순 없잖아. 이 수술, 당신도 내심 바란 거 아니었나? 아니야… 아니야…. 소리가 목에서 막혀 나오지 않았다. 다 나 때문이다. 오세인은 울었다. 싸락눈처럼 울다 제 흐느낌에 겉잠을 깼다.

꿈이었구나.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꿈…? 꿈이라고? 짧지만 쓰디쓴 미소가 머물다 지워졌다.  

오세인은 아내가 수술을 받고 왔다던 그날, 교사직 그만 둔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지방 소재 초등학교로 발령 받은 선배교사들 중엔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는 이가 많았다. 그들은 크고 작은 술자리 후엔 믿을 수 없게도 역 근처 집창촌으로 몰려가곤 했다. 오세인은 그들의 강압적인 한통속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거절해도 되는지 알 수 없었고 거절하는 구실이나 방법도 알지 못했다. 그는 아내에게 미안했고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꼈지만 그 정도는 선배들 핑계로 자위해 넘길 수 있었다. 그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아이들의 눈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 날 아침 그가 담임 맡고 있던 아이들의 눈을 그는 도저히 마주할 수 없었다. 그 자괴감과 그에 따른 사직 충동이 현실화한 것은 한 통화의 전화 때문이었다. 자신을 그저 ‘그 학교 학부모’라고 밝힌 사내가, 당신의 집창촌 출입을 목격했다며 나무랐다. 오세인은 시인할 수도 없었고 시치미 떼지도 못했다. 다만 침묵하고 있었다. 차멀미를 하듯 속이 울렁거렸고, 뒷머리가 울렸다. 통화가 끝나자 몇 장의 사진이 전송되어 왔다. 미니스커트에 한 뼘 폭이 채 안 될 탱크톱 차림의 여자가 오세인의 손을 제 가슴 섶에다 밀어넣고서 함께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선명한 연속 컷이었다. 사진 밑에는 사내 것으로 보이는 계좌번호가 찍혀있었다. 그리고 그 번호 옆에 두어 칸 띄어서 쓰여 있던 숫자

300.

오세인은 유독 2,3차 바람을 잡곤 했던 선배교사에게 상의했다. 선배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거… 그냥 줘 버려.

예? 

안 주면? 동네방네 소문 다 날래? 몇 푼 쥐어주고 입막음 하다가 기회 봐서 딴 데로 발령받아 가면 돼. 사실은 나도 지금……. 그래도 다행인 게 계속 물고 늘어지진 않더라고.

오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한번 코 꿰고 나면…

이봐, 오선생. 너 푼돈 아끼려다가 자칫 잘릴 수도 있다. 거기다 그놈이 나나 다른 선생들까지 또 찝쩍대면? 넌 안 잘려도 여기 못 다녀. 선생들 가만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응, 응…? 

오세인은 그 사내에게 ‘푼돈’을 쥐어주느니 학교에 사직서를 내고 말았다. 대책 없이 실업자가 되었다 해도 당장 계좌가 바닥나는 건 아니었지만 그 빈곤감과 위기감이 지속되고 아내가 예정에 없던 임신을 하자 매사가 절박해졌다. 점심 한 끼, 버스 환승비마저 새삼스러웠다. 그런 때, 아무리 상투적인 수법의 사기라도 귀에 예리한 미늘이 되어 걸리기 십상이다. 몇 달만 좀 도와 달라, 이건 꿔주는 게 아니라 투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왜 클 수 있는 돈을 눌러앉고 사냐, 내가 누구냐, 우리가 어떤 사이냐……. 그는 친구에게 얼마 안 되는 전세금까지 날리고 말았다. 

아내와 헤어지던 날, 그날도 '글로리 박스'가 흘렀다. 아내는 이른 아침에 커피콩을 천천히, 오래오래 갈아 드립커피 두 잔을 내려놓고 식탁으로 오세인을 불렀다. 그녀는 푸석한 얼굴로 제 앞의 커피 잔만 오래 바라보았다
우리 이만 끝내.

아내의 그 말에 오세인은 다만 머그컵에 반쯤이나 남은 커피를 한 모금에 삼켰을 뿐이었다. 그리고 두어 번 끄덕였다. 커피가 너무 뜨거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내와는 그렇게 남이 되었다. 오세인은 싸구려 고시원으로 갔고 손에 잡히는 대로 펼쳐든 게 교정직 공무원 수험서였는데, 이꼴 저꼴 안 보고 죽은 듯이 살기엔 그만한 직업도 없어 보였다. 그렇게 그는 해동청 두 마리가 앉아 있는 제복 모자를 쓰고 어깨엔 무궁화 봉오리 두 송이를 얹게 되었다.

5주간의 신입교육을 마치고 그는 충청도 산골 도시 외곽의 오래된 교도소로 발령 받았다. 노선이 긴 시외버스 종점에서도 15분은 좋이 걸어야 회사 외정문이 나왔다. 폐쇄적인 교도관 생활은 그를 더욱 외롭고 황폐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완전히 무너지지도 않게 해주었다. 아침 9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24시간 근무 후 하루 비번, 그 다음날은 일반 회사원들처럼 9시부터 6시까지 낮 근무. 그리고 다시 24시간 맞교대. 비번일이면 그는 끈끈이 덫에 걸린 비루먹은 짐승처럼 종일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전날의 밤샘 격무로 인한 수면 부족이 되레 불면증을 불러오고 불면증은 지긋지긋한 선잠 속에 그를 가두었다. 그러한 3부제 근무의 반복은 그를 만성 피로와 편두통에 시달리게 했지만, 그 엉망이 된 생체리듬은 한편으로 상처를 견디는 약이 돼주기도 했다. 효험 좋은 독약. 다만 비번일 저녁이 문제였다. 길고 지겨운 잠자리에서 일어나 마주하는 노을과 어스름은 그의 멍한 정신에 허탈감을 주입했다. 체내에서 그것은 독한 불행감으로 화학변이를 일으키며 퍼졌다가 담배연기와 함께 뱉어졌고 연기와 함께 증폭되었다. 좁은 실내는 불행으로 자욱했다.

내일 당장, 내일 당장, 이 말을 계속 읊조리며 TV 홈쇼핑 광고나 개그 프로그램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내일 당장’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건지, 아내를 찾아가겠다는 건지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아내가 보고 싶다. 남이 된 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늘 암암하다. 그녀에게 갈 수만 있다면…….

오세인은 깊은숨을 내쉬고 머리를 흔들며 눈을 떴다. 필터만 남은 채 꺼진 꽁초가 입에 물려 있었다. 그는 자신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방바닥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저거대로 한 번 해봐?

오세인은 물끄러미 책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소리를 내어 큭큭 웃었다. 그때 문득 사형장 근처에서 천둥소리 직후에 들었던 사내의 난폭한 웃음소리, 그 환청이 떠올랐다. 아니, 어디선가 들려온 듯했다.

크하하하학!

그는 그 웃음소리를 흉내내 보았다.

책으로 또 눈길이 갔다. 어쩐지 그 더러운 뭉치가 자꾸 끄잡아 당기는 것 같았다.

2347은 외부 병원에서 퇴원 후 병사(病舍)로 들어갔다. 그제는 풀이 죽어 종일 아무 말 없이 누워만 있었다. 방성구는 풀어주었지만 만일을 몰라 압박복을 입혀놓았으므로 밥도 병사담당 봉사원이 떠먹여 주었다. 그 소문을 들은 몇몇 재소자들이 세상에 그런 호사가 어디 있냐, 우리도 꼴통 한번 부려보자, 이렇게 툴툴 대다 김강준에게 쥐어 박혔다. 그 중 한 명이 폭행으로 고소를 하겠다며 대들자 김강준은 힘센 재소자들, 소위 왈왈이 두엇을 시켜 그 ‘고소 운운’을 얼굴이 팅팅 붓도록 두들겨 패버렸다. 

오세인은 그 모든 일상이 시들해졌다. 반면 3일에 한 번씩, 비번일 저녁때 반 장난삼아 흉내 내 본 혼육분리술에는 바싹 재미가 붙었다. 묘한 면이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늘 듣던 음악을 틀어놓고 책에 적힌 대로 따라하다 보면 뭔지 모를 미세한

소음이 음악에 섞여 들릴 때도 있었는데, 이게 뭐지? 디제잉 잡음은 아닌데…, 이렇게 갸웃하는 순간 소음은 깨끗이 사라지곤 했다.

혹시…?

그의 시도는 진지해졌다.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난 어느 날엔가 한동안 잠잠했던 2347이 또 말썽을 피웠다. 압박복을 제거해주자 밥을 씹어 제 오물에 섞어 던지며 종일 욕지거리 악을 썼다. 그렇잖아도 병사는 오래된 건물인데다 환자들이 기거해 왔으므로 늘 뭔가 썩는 듯한, 썩은 것이 짓이겨진 듯한 군내가 건물 벽 속속들이 배어있었다. 그 냄새에 그때그때 간신히 적응하고 있던 근무자들의 후각과 비위를 2347이 시도 때도 없이 들쑤셔놓았던 것이다. 추하고 더러운 것도 공포가 된다. 공포는 피로를 배가했다.

그날 일근을 마치고 돌아온 오세인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저녁부터 음악을 틀어놓고 내처 뒤척였다. 잠도 안 오는데 또 혼육분리 시도나 해볼까 하다 그만 두었다. 너무 피곤했고 다음날이 24시간 당무일이었다. 어떻게든 일찍 자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그 책 내용이 자꾸 떠오르는 건 어떨 수 없었다. 한밤이 되자 벽시계의 초침 째깍거리는 소리가 껄끄러운 뼛조각처럼 음악에 섞였다. 그는 벽을 향해 돌아누웠다. 멀리서부터 파도와 종소리가 어우러진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자동차 진동음이 뒤섞였다. 그것들은 몹시도 유려하게 섞여 있어서 어느 것이 소음이고 음악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진동음은 몸에도 가벼운 진동을 불러왔다. 들린다기보다 느껴지는 소리. 몸이 나른해졌다. 꿈이야 뭐야, 이게. 오세인은 아득한 가수(假睡) 상태에서 웅얼거렸다. 그렇게 한동안이 지나자 소리와 진동이 잦아들고 사위가 고요해졌다. 그 고요 속에서……,

한 사내가 보인다. 파란 옷에 짧은 머리, 재소자 입성의 건장한 사내다. 사내는 멀리 산봉우리가 보이는 어느 저택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왜 그런지 그의 어깨에 간헐적인 경련이 일곤 한다. 뒷목에 서린 긴장과 힘, 분노가 그대로 느껴진다. 저건 누구 집인데 저럴까… 오세인이 갸웃하자 그 집 문패가 눈앞에 확 다가온다.

우 갑 춘 … 우갑춘?

오세인이 문패 글자를 읽고 있을 때 그 문패 밑에서 사내가 문득 움직임을 멈춘다. 미동도 없던 그, 흘끗 고개를 돌린다.

우갑춘이다!

오세인은 소스라치며 잠을 깼다. 순간 어디서 연유하는지 알 수 없지만 강렬한 이물감(異物感)이 느껴졌다. 자신의 몸이 묘하게 낯설었다.

방금 우갑춘을 봤다. 본 거다, 분명. 꿈이 아니다. 하지만 꿈이 아니라면 어떻게……? 설마 내가 지금 그 말도 안 되는 혼육분리란 걸 했던 건가. ‘천지간에 미만하나 아는 이 적은’ 그 생시탈혼을?   

그는 더럭 겁이 났다.

다음날 아침 오세인은 출근하자마자 2347에게 갔다. 새벽부터 몇 시간째 영감이 담당을 찾으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세인이 다가가자 2347은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눈길에서 오세인은 무언가를 ‘뚫어지도록’ 본다는 말을 실감하였다.

2347이 말했다.

- 그래, 맞아. 오세인 교도 당신이었어. 긴가민가했지. 당신도 이제 흐흐…, 그만 둘 수 없을 거다. 한번 맛을 본 이상은…….
2347은 활짝 웃었다. 누런 틀니 새로 벌어진 입이 시커멓고 더러운 구덩이 같았다. 





5.

우갑춘 출감 후에도 수그러들 줄 모르던 그 패거리의 위세는 두 달 남짓 만에 깨어졌다. 그건 이제 갓 스물이 될까 말까한 한 꼬맹이 잡범의 투정에서 비롯되었다.

운동시간에 그들이 족구를 하며 공 심부름을 시키곤 하던 그 꼬맹이가 하루는 웬일인지 시큰둥,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빠진 공을 미적거리며 쫓아갔고 잡은 공은 굼뜨게 보내왔다. 재촉을 할수록 어깃장은 더 천연덕스러워졌다. 공놀이의 맥이 끊기고 흥이 깨진 치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그들은 녀석을 가운데 세워놓고 교도관 눈을 피해 뺨을 때리고 정강이를 걷어찼다. 꼬맹이는 어린아이처럼 퍼질러 앉아 발버둥 떼를 쓰며 울었다. 재소자들 사이에 볼멘 쑤군거림이 번졌다. 그러다 누군가에게서 이런 엄청난 소리가, 그것도 쩌렁 울리도록 크게 터져나왔다.     

- 니기미, 개갑춘이만 나가면 봄날일 줄 알았더니…….

순간, 운동장에선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우갑춘의 직계, 수번 7162가 웃통을 벗어젖히며 그 정적과 부동의 공간으로 걸어 나왔다. 벌건 기운이 얼굴을 지나 숱 빠진 정수리에까지 퍼져 올라서 목 위 두상만 보면 영락없이 독 오른 뱀 대가리였다. 그 독은 그의 심상한 어조에도 배어 있었다.

- 누구냐.

7162는 큰 소리 난 주변의 잡범들 한 명 한 명을 쏘아 보았다. 그들은 모두 움찔하며 저희들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 어떤 감자 새끼냐고!

7162의 메마른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종주먹을 대고 을러서 그의 겨드랑이 비곗살이 출렁거렸다. 그때 잡범 무리 속에서 팔 하나가 쭉 뻗어 올랐다.

- 이 감잡니다, 행임요. 

팔 주인은 웃고 있었다. 기막혀 하며 잠시 쏘아보던 7162의 얼굴에도 이내 웃음기가 번졌다. 한껏 째져올라간 그의 눈은 웃지 않았다. 7162가 다가가자 그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커 뵈는 팔 주인이 느물느물 시선을 틀며 말했다.

- 다 봤냐? 어따, 얼굴 닳겠네. 

- 해보자는 건가?

- 하긴 뭘 해, 이 호로새끼!

돌연 팔 주인의 넓적하고 큰 손바닥이 7162의 얼굴로 세차게 떨어졌다. 천만뜻밖, 건달 무리나 일반 재소자들이나 입을 벌리고 눈만 껌벅였다. 나가떨어진 7162는 고개를 흔들며 일어났지만 워낙 성깔 받치고 억장이 막히는지 말을 하지 못했다. 패거리 덩치들에게 욱욱, 손가락 짓으로만 팔 주인을 가리키다가 제 가슴을 주먹으로 세게 치고 나서야 말인지 뭔지 간신히 두어 마디 토해놓았다.

- 저저저, 가감…… 다,다…다!  

그 말 찌끼를 무리는 알아들었다.

‘저’ ‘감’자들 '다' 죽여버려!

그들은 누구누구 가릴 것 없이 ‘감자들’ 전부를 메치고 밟고 족쳐나갔다. 저희 무리 외의 재소자들을 그들은 감자라고 불렀다. 박박 깎은 머리통을 빗댄 호칭이다. 팔 주인 감자만은 애초 기세 그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떼주먹과 발길질을 견디어 뚫고 7162의 불알을 틀어쥐었다. 7162는 비명을 질러댔다. 그 모습은 사냥 당하듯 얻어터지던 감자들의 깡과 오기를 욱실거리게 했다. 팔 주인이 외쳤다.

- 야, 야! 기껏 살육갑 똘마니들이다. 개갑춘이도 없는데 언제까지 처발리고 살래?    

팔 주인은 7162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제야 교도관들의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저희끼리 티격태격하다 말 정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팔 주인은 7162를 일반 재소자들 앞에 패대기쳤다. 그러자 누군가 그의 한쪽 눈두덩을 질끈 밟았다. 다른 누군가는 옆구리를 걷어찼다. 7162가 커억, 하며 입을 벌리자 운동화 발이 거기 쑤셔 박혔다.

일단 발끈하고 나자 감자들의 기세는 사납고 집요해졌다. 늘 억눌렸던 데다 애초 그들이 강단이나 주먹실력 면에서 조직생활만 하지 않았다뿐 어차피 너나 나나 뒷골목 푼수, 건달들에 뒤질 게 별로 없는 것이었다. 힘에서 밀리면 상대 눈에 흙을 던지고, 급소를 차고, 달려들어 상대 볼살과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구석에서 움츠리고 있던 치들도 그제는 느물느물 딴죽을 걸어주기도 하고, 아닌 체 뒤에서 잡고 늘어지다 한 주먹씩 보태주기도 했다. 건달패거리는 당황했다. 이럴 땐 자해를 하든 언 놈 하나 발모가지라도 똑 따서 김 펄펄 나게 피칠갑을 시켜놓든, 악으로 눌러야 되는 건데 그럴 만한 연장도 없다.

망루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교도관들이 교도봉을 휘두르며 싸움판으로 뛰어들었지만 간만에 피맛 주먹맛, 저희 바닥 깽판맛을 다 본 사내들을 쉽게 제압할 순 없었다. 운동장은 교도관들까지 세 무리가 얽혀서 삼파전의 패싸움 판이 돼 버렸다. 잡범 셋에게 무차별로 짓밟히던 7162가 비명을 지르며 숨을 내쉬자 그 입에서 손톱만한 어금니 알갱이 하나가 피와 함께 뱉어졌다. 다른 건달들도 마찬가지였다. 뒤로 목과 허리를 꺾인 채 얼굴을 쥐어뜯기고 배를 난타 당하던 건달 하나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쓰러졌다. 평소 그들 앞에 설설 기던 감자들이 이제 감자가 아니라 짱돌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곧 무장한 경비교도대 병력이 출동하지 않으면 건달 무리는 그들이 흔히 하던 위협대로 감자들에게 되레 ‘처발리고’ 말 터였다.

그때, 잡범들이 한쪽에서부터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쓰러져 뒹구는 그 사내들 속에서 한 교도관이 우뚝 솟아보였다. 그는 한 손엔 220볼트 전류가 흐르는 전기충격봉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론 교도봉을 휘두르며 숫제 날뛰고 있었다. 아무리 사태가 험악해도 교도관이라면 매에 사정을 두고 상대 몸을 가려 때리는 법인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감자든 건달이든 일단 제 행동반경에 걸렸다 하면 순식간에 피범벅을 만들었다. 

저거 오세인 교도 맞아?

아까까진 결근이었는데. 연락도 안 되고.    

갑자기 왜 저래?

동료 교도관들은 모두 손을 놓고 오세인을 바라보았다. 그리 크지도 않은 키에 깡마른 체구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재소자 무리는 교도봉에 머리가 깨지고 옆구리를 찍혀도 덤벼들지 못했다. 자칫 특수공무집행방해로라도 몰리면 추가로 살아야할 형이 엄청났다. 징역, 단 하루도 끔찍한 판에 최고 7년 반이나 생으로 올려치기 당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오세인은 몸이 완전히 풀린 듯했다. 힘을 쓸 때 자연스레 나오는 날숨소리조차 없었다.

- 그마안, 아아악! 

사태를 사무동 2층 창으로 내다보던 보안과장이 비명 섞인 고함을 지르며 운동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머리 위로 권총을 치켜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공포탄이었다. 다음 것은 실탄일 터였다. 오세인은 총소리 난 쪽을 돌아보느라 폭행을 잠시 멈추었다. 보안과장은 펄펄 뛰며 달려온 서슬 그대로 오세인의 뺨을 갈기고 그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들이댔다.

- 이… 미친 자식이……

과장은 숨을 몰아쉬고 나서 간신히 말답게 한 마디 했다.

- 그거 빨리 안 내려놔?

오세인은 그제야 주위를 살폈다. 제 정신이 든 것이다. 그는 양손에 든 계구들을 바닥에 던졌다. 과장도 권총을 거두었다. 부하 직원에게 겨누었던 권총이 머쓱했는지 눈치를 보듯 오세인을 흘겼다. 

- 거, 사람 그렇게 안 봤더니…….

그러다 불끈 소리를 높였다.

- 너 이 자식, 어떡할 거야, 이거!

피를 흘리며 바닥에 널브러졌던 사내들이 오세인을 치켜보았다. 겁도 화도 잠시 비켜간 멍한 눈길들이었다. 오세인은 몸을 돌려 그때까지도 바닥에서 버르적대고 있던 7162에게 다가갔다.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잔뜩 찡그린 눈매에 꼭 그러쥔 주먹하며, 사나운 기세가 여전했다. 과장이 악을 썼다.

- 또, 또! 오세인이 너 거기 안 서? 

오세인이 멈칫했다. 어떤 생각이 문득 떠올라, 마치 그 생각에 덜미라도 잡힌 듯한, 그런 멈칫이었다. 그는 곧 쓴웃음과 짧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군 채 돌아섰다. 그리고 자기에게 집중된 모든 시선에 아랑곳없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탈의실이 있는 사무동으로 향했다. 그 유유한 걸음걸이에 누구도 제동을 걸지 못했다. 김강준이 멀찍이서 크게 말했다.

- 오늘은 일단 푹 쉬고 나와. 나중에 몸보신이나 하러 가자고!





6.



볕도 잘 들지 않는 반지하 자취방에서 오세인은 불도 켜지 않은 채 오후 내내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위층 방에서 발걸음 끄는 기척이 들려왔다. 오세인은 담배를 빼물고 일어나 불을 켰다. 욕실 문 앞과 세면대에 깨진 거울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는 그 중 큰 조각 하나를 집어들고 심호흡을 했다. 어쩐지 두려움 섞인 얼굴로 그는 머뭇머뭇 그 거울조각을 만지작대다, 일순 두려움을 떨친 양으로 그것을 제 얼굴 앞에 가져다 비췄다. 자신도 모르게 헉, 하는 덩어리 숨이 토해졌다. 그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그가 내젓는 것인지 저절로 흔들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음 순간, 크하하하악……! 크고 거친 웃음이 터졌다.

그는 거울 속 제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볼과 입가가 독립된 생명체인 양 파들거리다 경련이 인 채로 굳었다. 그 얼굴에 문득 엷은 웃음이 끼어들었다. 그는 거울에서 눈길을 거두며 문득 중얼대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 아직도 안 떠났구먼. 느껴져.

실내엔 오세인, 그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 하긴 너도 네 몸과 한번쯤 회포 풀 시간은 있어야겠지. 좋아!

그는 옷을 모두 벗으며 말했다.

- 어젯밤엔 너나 나나 둘 다 하도 황당해서 말이다. 지금도 난 도무지 정리가 안 되고 있다.

벌거숭이가 된 채로 오세인은 제 얼굴과 어깨, 가슴, 배와 성기를 쓰다듬고 매만지며 말했다.

- 이게 다 네 몸이었지. 하지만 이젠 아니다. 이젠 나 우갑춘의 몸이 된 거다. 오세인 너 아닌 나, 우, 갑, 춘. 오, 예!

그는 엉덩이를 빼고 손뼉을 쳐가며 건들대었다. 눈까지 지그시 감은 채, 요절한 홍콩의 미남 배우가 춤추던 영화장면을 흉내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을 크게 뜨고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하였다. 

- 으으으, 너… 너 누구냐.

그 목소리와 달리 오세인은 곧 짓궂은 눈빛을 허공에 보냈다. 어깨를 한번 으쓱하곤 다시 느물대는 어조가 되었다.

- 어이, 오세인이. 오세인 교도관. 예전의 나도 이랬다니까. ‘으으으, 너… 너 누구냐.’ 이게 첫마디였다. 다른 건 생각도 안 나. 오세인이 너도 어젯밤 그랬을 테지이……

길게 끌리던 말끝 발음과 함께 그는 큰 숨을 내쉬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후우우… 다시 한 번 크게 내쉬고 나서 그는 한결 차분한 투로 말하였다.

- 빨리 2347영감 몸뚱이로나 가라니까. 네 처지에 지금 그런 거라도 있는 게, 그게 어디냐고.

*

오세인의 유체는 정신을 가다듬어 자취방 실내를 내려다본다. 다른 모든 것은 뿌연 에너지체로 보이는 가운데 자기 몸만은 도드라진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그 몸 – 그 속의 우갑춘은 전날 몸을 가로챈 흥분은 가라앉았지만 착란감은 아직 그대로인 듯하다. 그는 벌거벗은 채로 냉장고와 주방을 뒤진다. 소주와 맥주를 잡히는 대로 꺼내어 양푼에다 그것들을 모두 붓는다. 꺽꺽, 목젖이 부러지는 듯한 소리를 내가며, 턱과 가슴팍에 흘려가며 그는 한달음에 모두 마신다.

*


그 전날 밤.

체외이탈 여행에서 돌아온 오세인의 유체는 제 몸 앞에서 「혼육분리의 술」 중 몇몇 구절을 새삼 되뇌어 보았다.

…… 혼과 육이 분리되면 홀연 만물이 달리 느껴진다. 형상은 그대로이나 산천초목에서 우수마발(牛溲馬勃)에 이르기까지 세상 제물이 제 근본 기운으로만 감지되므로 사방 옹벽이 공(空)하고 천장도 허(虛)하여져서 그런 것이 있든 없든 매 한 가지로 수이 통할 수가 있다.  

한데도 그의 몸은 평소와 달리 단단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왜 이렇지?

유체는 제 몸이 기대앉아 있는 소파를 만져보았다. 유체 상태에서 감지하는 그것은 순수 에너지 구성체다. 평소와 다름없이

유체의 손이 쑥 들어갔다. 몸도 이래야 되는데…….

유체는 자신의 몸, 정수리께 허공에 떠서 다시 한 번 집중을 다해 외쳤다. 내 몸속으로! 그러자 그의 몸이 눈을 떴다. 잠시 초점 없이 허공을 둘러보던 몸은 빙긋이 웃었다.

- 오세인이? 온 것 같군… 왔어.

어어, 어어엉? 오세인의 유체는 질겁을 하며 물러났다.

- 나 우갑춘이다.

몸이, 내 몸이 우갑춘이라니. 저 속에 우갑춘이 들어가 있다니! 오세인의 유체는 정신없이 제 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역시 들어가지지 않았다. 이미 다른 존재로 그득 찬 것이다. 유체는 털썩, 천장으로 허물어졌다. 천장이 쑤욱 꺼졌다. 물질로 된 실제 천장은 그대로였다. 유체는 허덕였다. 

몸이 말하였다. 

- 오세인이, 지금쯤 넌 아마 천장이나 벽 한 구석에 녹아들어 있을 거다. 내 잘 알지, 혼령이라도 어찌나 다리에 힘이 풀리는지 말이야. 이빨이 덜덜 떨리고 온몸 핏줄이 다 터지는 것 같지. 하지만 안심하라고. 네 이빨이나 핏줄은 이미 다 내 차지니까. … 이런, 이런! 예전에 그 더러운 늙은이가, 아니 2347의 늙은 몸뚱이 안에 들어있던 황장호 놈이 내 몸을 가로챈 직후에 내게 했던 말을 지금 내가 그대로 떠벌이다니. 으흐, 이런 우라질… 우라질…….

몸은 제 두 손을 눈앞에 들어올려 폈다 오므렸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벌컥 일어났고 제 모습을 내려다보았고 급히 욕실 거울을 마주했다.

오세인의 얼굴.

낯익지만 낯선 얼굴.

얼굴은 도리질을 쳤다. 오세인의 몸 - 몸속의 우갑춘은 그 얼굴에 이마를 세차게 박았다. 거울 속 얼굴이 갈가리 찢어졌고 거기 비친 실내엔 무수한 잔금이 갔다. 그 잔금들에 이마에서 배나온 핏방울이 스미며 흘렀다. 몸은 거울에서 이마를 떼지 않고 비비다 쿵쿵 박아대었다. 깨어진 거울조각들이 제 틀거리에서 떨어졌다.

크으하하악……!

오세인의 몸이 웃었다. 크고 거칠고 능갈맞은 우갑춘의 웃음소리였다. 그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어흔들며 환호의 몸짓을 보이기도 했지만 웃음소리에 차츰 울음이 스며들었다. 

*


소맥 폭탄주 한 양푼을 단숨에 들이켜고 나서 몸은 흡족한 술 진저리를 치며 말한다.

- 어젯밤엔 술 생각도 못했지. 최상품 몸뚱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노리고 바랐던 걸 얻었는데도 빌어먹을, 불쑥불쑥 죽고 싶어지는 건 또 무슨 염병할 심산지 말이야. 오늘은 그래도 괜찮았다. 이 우갑춘이가 교도관도 돼 보고. 교도봉까지 원 없이 휘둘러보고 말이다.

말끝에 그는 허공을 향해 찡긋 웃어 준다. 순간, 천장에 꺼져있던 오세인의 유체는 저놈을 죽이고 말겠다, 어떻게든 죽이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절망한다. 저 몸은 나다…….

- 오세인이 네가 그렇게 빨리 그 책대로 따라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난 육 개월도 더 걸렸거든. 내가 그 늙은이 꼬임대로 혼육분리를 하게 됐을 때도 영감은, 아니 영감 몸에 들어있던 황장호 그 놈은 제 속셈을 그 당장에 드러내지 않았다. 나를 따라 나와서 내 모든 걸 다 익힌 다음에 가로챈 거다. 내가 시퍼런 칼침 받아 가면서 평생 키워놓은 조직에다 내 아우들 계보, 걔들 한 놈 한 놈의 버르장머리, 싸움 특기까지. 내 업소 계집애들 속살 생김생김까지 모조리… 아주 깡그리……! 

그는 다시 욕실로 간다. 또 거울조각을 주워 들여다본다. 웃다가 찡그렸다가 입을 벌려 이빨을 살피기도 하고 혀도 내밀었다가…, 그는 고개를 젓는다. 이게 아니야… 어색해. 그는 거울조각을 팽개치고 와서 전화기며 머그컵, 재떨이 등속의 탁자 위 물품을 쓸어버린다. 허리를 숙인 그 엉거주춤한 시선이 고물 텔레비전 화면에 닿는다. 거기 비친 건 우갑춘 아닌 오세인의 얼굴. 그 얼굴이 웃는다. 일그러진다. 소파 밑에 놓여있던 아령 하나가 화면으로 날아든다. 얼굴이 부수어진다. 그는 다른 아령의 한쪽 끝을 쥐고 휘두르며 닥치는 대로 실내를 부수기 시작한다.

어색해. 어색해…….

그는 음의 높낮이도 없이 반복해 읊조린다. CD 카세트와 노트북 컴퓨터가  부서지고 냉장고 문이 우그러진다. 낮은 천장에 붙어있던 형광등이 퍽, 소리와 함께 깨어지자 어둠 속에서 하얀 형광물질 가루가 쏟아져 날린다. 그는 한층 격하게 아령을 휘두른다. 형광물질 입자들이 천장 근처 창으로 들어오는 가로등 빛을 반사하며 그의 몸놀림을 따라 부유한다. 그의 얼굴은 기묘한 빛에 감싸인다. 주방 찬장의 유리와 그릇들이 깨어져 바닥에 사금파리로 깔린다. 그 위를 그의 맨발은 아무런 주저도 위축도 없이 지근지근 밟고 다닌다. 그는 작두를 타고 공수를 하는 무당 같다. 주방과 거실 바닥은 곧 피발자국투성이가 된다.

그는 숨을 씨근거린다.

- 아프군. 아파서 좋아. 역시 난 제대로 된 몸을 얻었어.

그는 담배를 꺼내 물고 두리번대다 가스레인지를 켜서 불을 댕긴다. 피범벅이 된 두 발은 어느 누구와도 상관없는 별도의 몸인 양 발작적으로 파들거린다. 몸은 소파로 허물어져서는 담배연기를 한숨에 섞어 뱉는다. 재와 담뱃불이 길게 쌓이며 타들어간다. 불기가 필터에 닿자 그는 꽁초를 입에 넣었다가 아무렇게나 쏘아 뱉고는 쩝쩝 입맛을 다신다.

- 이봐, 교도관 나리. 자넨 꿈이 뭐였나? 어릴 때 내 꿈은 후우…, 내 꿈은 ‘저 푸른 초원 우에!’, 남진, 아니 엘비스였다. 웃기지. 웃기는 얘기다. 깡패의 꿈이 엘비스였다니…….

그는 말을 멈추고 흠흠, 숨을 들이쉬며 콧잔등을 씰룩거린다. 지린내…, 엘비스 하면 이 지린내가 난다니까. 이번엔 그의 입가가 씰룩인다. 웃음이다. 그는 깍지 낀 두 손으로 뒷머리를 받치고 아련한 눈빛이 된다. 아마도 제 어린 꿈을 돌아보는 듯하다. 그 중 어느 지점에선가는 기억과 연결된 혼잣말을 띄엄띄엄 읊조리곤 한다. 그것은 오세인의 유체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


우갑춘이 엘비스를 처음 본 건 스크린에 늘 스크래치 장맛비가 내리는 서울 변두리동네 극장에서였다. 10살, 11살쯤의 또래 놈들과 여자 화장실 창문에 매달려 있다 틈을 봐서 기어들곤 했던 것이다.

극장의 낡은 화면엔 늘 시큰한 냄새가 배어있었다. 뭔지 분간할 수 없는 액체가 말라 얼룩이 진 보푸라기 의자는 더 심했다. 아예 지린내였다. 꼬마 우갑춘은 그 악취들을 뭉뚱그려 ‘극장냄새’라고 여겼다. 극장에선, 극장이라면 으레 풍기고 맡아야 하는 냄새.  

그 냄새 속에서도 엘비스는 기막히게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저 푸른 초원 우에, 합!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남진 리싸이틀!

동네 전봇대에 붙어있던 그 남자 가수의 공연 포스터를 올려다보며 아이는 밤늦도록 앉아있었다. 처음엔 몰래 그걸 떼어가려 했지만 아무래도 남자 가수 몸에 흠집을 내지 않고는 뗄 수 없겠다고 판단한 다음부터는 아예 거기 그렇게 주저앉아 하염없이, 한숨을 쉬어가며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소룡 추리닝처럼 아래 위가 붙은 하얀 옷에 박혀있던 은징, 금징들 하며, 뒤통수를 감싸듯 넓고 높고 빳빳하게 서있던 반짝이 칼라 깃에, 두툼하고 날카롭게 각이 진 구레나룻, 어른들이 막걸리 잔 비울 때랑 비슷한 폼으로 제 입 앞에다 거꾸로 세워 든 마이크와 찡그린 콧잔등까지…….  

그 리싸이틀 날, 함께 목숨을 걸겠다는 또래 용사는 없었다. 그런 특집 날에는 극장 기도의 경비가 한층 삼엄했고, 걸리면 평상시처럼 몇 대 쥐어박히는 정도가 아니라 영사실 뒤편 후미진 곳으로 끌려가 대걸레 자루로 빳다를 맞아야 했다.

나 혼자서라도, 죽어도 좋다!  

첫날은 실패였다. 그래도 운이 나쁘다고 할 순 없었다. 여자 화장실 창을 넘어 들어가자마자 잡혀서 쫓겨나긴 했지만 옆구리 한 대 걷어챈 게 전부였다. 극장 기도 역시 쇼에 정신이 팔려있었던 것이다. 리싸이틀이란 게 여자들을 두들겨 패는 건지 뭔지 상영관 안에선 누나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기도는 갑춘을 향해 주먹을 뻗다말고 그 비명소리들을 좇아 뛰어 들어갔다.

아이는 되게 걷어챈 왼쪽 옆구리를 주무르며 그날 종일 극장 건물을 돌고 또 돌았다. 다음날 공연 때 그는 극장 건물의 뒷벽을 넘어서 발끝으로 2층 난간을 타고 들어갔다. 무대 위 가수는 포스터에서 봤던 그 차림새 그대로였다.  

- 거참, 멋지데. 그런데 그 멋있는 남진이가 사실은 옷이고 폼이고 춤이고 간에 외국의 어떤 가수 흉내를 냈다는 거야. 말하자면 짝퉁을 보고 내가 뻑이 갔던 거지. 그 오리지널 외국 가수가 누굴까 오래 궁금했다.

그가 오리지널을 처음 본 건 ‘짝퉁을 보고 갔던 뻑’이 다시 돌아오기에 충분한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 냄새나던 극장이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소방서가 들어섰을 때 그는 중학생이 되어있었다.

박치기 왕 김일과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끼의 레슬링 빅매치가 있던 어느 일요일 날. 초저녁도 되기 전부터 동네 전파상 텔레비전 앞에 진을 치고 있던 꼬맹이들에게 공연히 꿀밤이나 한 대씩 먹이며 자긴 아닌 체, 레슬링은 다 쇼라던데, 뭐… 하고 있을 때, 오란씨 광고 다음에 김일이 호랑이와 곰방대가 그려진 특유의 가운 자락을 휘날리며 나타났고 그 김일 옆에서 갑자기, ‘하늘에서 별을 따다,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준 것처럼 그렇게 그 ‘오리지널’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전파상 진열장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24인치 브라운관 옆에 8인치 화면이 꼽사리처럼 놓여있었다. 거기서, 팬티바람의 거대한 김일 옆에서 쪼그만 엘비스가 AFKN(주한미군 방송)으로 나왔다. 엘비스는 씨앗처럼, 그러나 24인치 김일보다 거대하게 소년 가슴에 꽂혔다.    

- 그때 양쪽 관자놀이에 전기가 오르는 것 같았다. 한 백만 볼트 정도는 됐을 거야. 그래, 그게 엘비스란 놈이었어. 엘비스 프레슬리. 그 앞에서 난 결심했다. 이다음에 나는 저 사람이 되겠다, 엘비스가 되겠다!

소년 우갑춘의 꿈이 된 엘비스는 또한 그의 악과 깡의 근원이기도 했다. 

면면이 눈에 익은 깡패들이 아버지의 카바이드 불 포장마차로 들이닥쳐서 술을 마시고, 그 카바이드 불로 담뱃불을 붙이고 질끈 문 그 담배 한 대가 채 다 타기도 전에 포장마차를 뒤집고 산산이 부순 날, 그는 보았다. 깡패들의 난동을 감히 어쩌지 못하고 부서지는 포장마차 옆에 쪼그려 앉아 두 손으로 다만 얼굴을 가리고 있던 아버지. 그날 아버지는 술에 취해 아들을 때리고 옷을 몽땅 벗겨 셋방 쪽문 밖으로 쫓아냈다. 벌거숭이 소년은 울지 않았다. 추위에 아래윗니를 딱딱 부딪치며 혼자 읊조렸다. 난 엘비스가 될 거야. 이다음에 난 엘비스가 될 거야. 그 읊조림은 차마 소리가 되어 나오지도 못했다. 그저 추위에 소스라치며 용을 쓰다보면 절로 나와 떨리는 치 같은 것이 되곤 했다. 그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쫓겨나면, 바싹 오그라든 자지를 누가 보든 말든 아이는 자투리 전선줄을 꼬아 만든 문고리에 매달려 울었다. 손으로 문고리 줄을 잡고 쪼그려 앉아 빌고 또 빌었다. 뭘 빌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다신 안 그런다’는 말만 죽도록 되풀이했다.

소년은 달라졌다.

그는 얼고 곱은 두 손으로 제 샅을 가리게 되었고, 뭐가 뭔지도 모르는 채로 비는 대신에 악 문 잇새에 엘비스를 물고 있었다. 


- 악을 키워서 아무도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되면 그때야 나는 그 놈의 엘비스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해가 가나? 말하자면 엘비스는 당시 내겐 가수도 아니었고 사람도 아니었다. 신이나 어떤 도달해야 하는 최고 목표,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꼭 따고 싶어하는 올림픽 금메달 같은 거… 그래, 그런 거. 살려고, 내 애비, 그 껍데기처럼 시시하게 등신 같이 살고 싶지 않아서 깡 부리고 칼도 받고 악을 키우면서 그렇게 살았는데…….

우갑춘은 17살 때 고교 퇴학을 당한 직후 몸에 ‘칼을 받’았다. 아버지를 괴롭히던 그 깡패들에게 쇠파이프를 꼬나쥐고 쳐들어갔던 것인데, 암만 동네골목 양아치들이었다곤 해도 그들은 성인이었고 나름 프로였다. 그때 우갑춘은 누군가를 칼로 찌르는 짓을 그 바닥에선 왜 ‘지진다’고 하는지 알게 되었다. 실제로 뜨겁다. 지금도 그는 몸을 찌르고 들어온 칼보다 더 뜨거운 것을 알지 못한다. 까무러친 채 인근 야산 밑 쓰레기장에 버려졌다가 마침 내려준 비를 맞고 깨어났을 때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지져진 아랫배를 감싸 쥐고 가출해 있었던 단칸셋방으로 기어들어 갔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아버지의 술 취한 주먹질이었다. 싸움을 했다, 그보다 더 큰 죄는 지고 왔다, 맞고 왔다 였다. 그럴 바에야 내 손에 죽으라는 것이었다.

그는 다시 까무러쳤다. 

며칠 밤낮을 고열에 시달리며 배를 끌어안고 혼자 몸부림치다 일어난 그의 한 손에는 시너통, 다른 한 손에는 지포라이터가 들려 있었다. 주머니마다에 칼과 송곳 등속을 챙겨 넣었다가 다시 다 빼버렸다. 어쩐지 시시한 것 같아서였다. 그 길로 그는 자기를 지진 건달들을 찾아 나섰다. 걸음걸이는 물론이고 온몸이 부들거렸지만 정신은 맑았던 걸 기억한다. 그 맑은 정신은 오직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시하게 안 산다.

시시하게 안 산다.

죽어야 한다면 죽을 것이고 죽여야 한다면 죽이겠다.

그가 살던 서울 변두리동네에서 더 변두리로 들어가면 가내 수공업 수준의 몇몇 허름한 공장이 있었다. 커다란 깡통을 세로로 쪼개 엎어놓은 것 같은 양철 소재 가건물들이었다. 그 가건물 중 하나에 낡고 망가진 사무실 집기를 들여놓은 건달 소굴은, 쟤 뭐냐, 어,어…, 하는 짧은 새에 온통 시너를 뒤집어썼다.

그곳 주인들의 옷과 머리카락도

그들이 앉아있던 비닐 소파도

그리고 시너를 뿌린 당사자의 온몸도.

시너에 젖은 갑춘은 시너에 젖은 그곳 ‘형님’의 멱살을 한 손으로 틀어쥐고 그와 한 뼘도 안 되는 거리에서 눈을 맞추었다. 주변의 누구도 어쩌지 못했다. 움직이지도 못했다. 형님과 갑춘의 눈과 눈 사이에 지포라이터가 치켜들려 있었다. 뚜껑을 열고 갑춘이 동그란 점화기를 엄지로 누른 채였다.

형님이 말했다.

켜봐, 이 새끼야.

갑춘은 말하지 않았다. 다만 침을 삼켰다.

켜보라고!

갑춘은 웃었다.

켜……

갑춘이 웃음을 멈추었다. 그의 눈빛이 순해졌다. 그의 얼굴이 편안해졌다. 라이터 점화기 위의 엄지에 힘이 들어갔다. 순간, 형님이 급히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미안하다. 으으……

그는 체머리를 흔들다 갑자기 제 주변을 돌아보며 악을 썼다.

뭐해, 이 새끼들아. 빨리 꿇어! 안 꿇어?

갑춘은 짧게 말했다.

너도.

그리고 형님의 멱살을 놓았다. 형님도 꿇었다. 갑춘은 엘비스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 같았다.

*


- 어이, 어이! 오세인이. 듣고 있지? 따지고 보면 우린 피를 나눈 형제 이상이 아니냐 말이다. 몸을 나눈 형제라고나 할까. 자넨 꿈이 뭐였어? 노트에 끼적거려 놓은 게 있던데 시인이었나? 아니면… 선진 교정행정을 구현하는 위대한 교도관님? 
그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낄낄댄다. 웃고 있는 제 볼과 얼굴 곳곳을 요모조모 더듬고 쥐어본다. 그의 눈에는, 웃음이 담겨있지 않다. 눈길은 더 아득해져 간다.

- 몸을 바꿨으니 이제 그 말도 안 되는 엘비스 꿈도 없어질까. 

그가 혀로 입술을 축이며 침을 삼키자 마른 목젖이 끄윽, 하고 움직인다. 베이고 찢긴 발바닥에서 그치지 않고 흘러나온 피로 바닥이 흥건하다. 그는 벗어던졌던 러닝셔츠와 팬티를 집어 발에 둘둘 감는다. 그것은 금세 붉고 축축해진다.

- 그날 말이다, 처음으로 막 체외이탈한 널 내 집 대문 앞에서 그렇게 우연히 보다니 말이다. 그 다음부터, 그러니까 지난 두 달 동안 오세인이 네 유체를 몰래 따라 다녔다. 어떤 날 네가 혼육분리에 실패할 때는 애깨나 탔지. 그렇다고 황장호 그 놈처럼 교활한 계산속으로 몸 바꿔치기를 미룬 건 아니야. 그런 건 내 스타일이 아니지. 이건 너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너무 생소한 몸엔 유체가 잘 안 들어가진다. 물론 2347영감 몸이야 워낙 터미널 화장실 같은 거라 상관없지만. 오세인이 네 몸의 하체에는 들어가기 수월했는데 상체가 자꾸 어긋나더라고. 왜 그럴까? 난 안 되는 건가… 고민이 좀 됐다. 그러다 결국 알아냈지. 아하, 저 놈이 하고 있는 생각을 나도 해야 되는 거로구먼! 너하고 감정이랄까 느낌 같은 게 어느 정도 맞아야 몸도 유체를 받아들이는 거였어. 그러다 보니… 흐흐… 거 왜, 네가 제일 자주 찾아간 그 여자 말이다, 네 옛날 마누라. 그렁저렁 쓸만해 보이기 시작하더만. 아쉬운 대로 뭔가 해볼만 하겠어. 네가 써 놓은 글로 시집도 낼 거고. 그 다 네가 원하던 거 아니었나? 오세인이 몸을 쓰고 오세인이 꿈을 꾸고, 그럼 난 이제 뭐가 되는 건가……. 

우갑춘도 오세인도 아닌 사내. 우갑춘이며 동시에 오세인인 사내. 그의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신음하며 숨을 몰아쉬기도 하지만 그는 곧 혼곤한 잠으로 빠져든다.

유체 오세인은 잠든 제 몸을 내려다본다. 형광물질 가루가 엉겨붙은 속눈썹과 눈자위가 떨리고 있다. 그 얼굴이 몹시 낯설다. 어쩐지 그것은 깡패 우갑춘과 더 어울려 보인다. 난장판에 어지럽게 찍힌 피투성이 발자국이 오세인은 두렵다. 그것은 앞으로 그가 그대로 밟고 가야할 길인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유체는 눈을 감고 온 마음을 모은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제 몸을 의념하고 또 의념한다. 심장의 두근거림과 푹 자고난 아침에 켜던 기지개와 아령 체조를 할 때 힘을 먹고 부풀던 근육감각과……. 그러나 유체는, 일그러지고 만다. 제 몸으로 아무리 의식을 집중해도 들어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자신과는 상관없는 완벽히 다른 존재다.
몸이 후욱, 하고 숨을 내쉬며 눈을 뜬다. 상당 기간 체외이탈을 하며 유체를 경험해온 우갑춘은 다른 혼의 움직임과 에너지 흐름을 예민하게 감지한다.

-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짓, 그거야말로 망상이란 생각 안 드나? 죽느냐 사느냐의 상황에선 생각은 적게, 분위기 파악은 빨라야 하는 법이다. 그거야말로 생존의 열쇠지. 내 다시 한 번 충고한다. 여기서 헛수작하지 말고 빨리 2347 몸으로 가봐. 아무리 쭈그렁 번데기 같은 거라도 지금 네 처지에선 그게 어디냐 말이다. 거기다가, 그 몸뚱이 그거 오래 비워두면 위험하다. 하도 추접해서 한 두어 군데 일찍 썩어갈 수도 있고, 죽은 귀신이 빙의해 들어갈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너는 그야말로 생령이 되는 거다, 생령. 그렇지 않나? 

유체 오세인은 아차 그렇겠다고, 그날 밤 처음으로 제 몸의 말에 수긍한다. 몸의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고 눈길은 회한으로 깊다.

- 일단 영감 몸으로 들어가면, 아무도 너를 알아보지 못할 거다. 아무도 네 말을 믿어주지 않을 거고. 그럴 가능성조차 도무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어떻게 하겠나? 자살을 할 건가? 아니면 다 포기하고 그냥 그 영감 몸으로 살다 죽는다? 호오, 그거 좋은 생각이군. 누군가는 그렇게 해야겠지, 누군가는. 그래야 그 몸덫이 싸지르는 원한의 고리가 끊길 테니까. 하지만 누가? 오세인이 네가? 아니, 넌 무슨 짓이라도 할 거다. 무슨 짓을 해도 가책조차 생기지 않는다. 일단 살고보자, 나부터 살고 봐야하는 거 아니냐, 이것처럼 편하고 좋은 핑계도 없으니까. 

몸은 키득대기 시작한다. 무엇이 우스운지 어깨까지 들썩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배를 움켜쥔다.

크하하하악……!

우갑춘 특유의 감사나운 웃음소리가 방안 곳곳에 널린 사금파리와 핏자국에 엉겨붙듯 떠돈다. 흩어진 거울조각들은 어둑한 실내의 새벽 모습을 제각기 잘게 부수어 비춘다.

우갑춘이 웃음을 뚝 멈춘다. 초점 없는 눈으로 새벽빛이 흘러드는 창밖을 바라본다. 반지하방 창과 연해있는 지면엔 플라타너스 낙엽들이 떨어져있다. 늙은이 살갗 같다.









7.


오세인의 유체는 2347의 황량하고 메마른 육신 곁을 떠돈다. 2347은 병사를 거쳐 중구금실에 박혀 있다. 유체가 나가 있는 극노인의 육신은 시체와도 같다.  창도 없는 0.7평, 방은 썩어 가는 관과도 같다. 바닥은 들썩이고, 악취가 밴 벽은 추깃물 같은 습기와 곰팡이 얼룩으로 덮여있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저 구드러진 육신이 좁고 침침한 방과 썩 어울린다고 유체는 생각한다.

곧 기상나팔 소리가 울릴 것이다. 사동 복도를 오가는 담당들의 발소리와 그들이 외치는 '기상', '기상' 소리도 들릴 것이다. 유체 오세인은 그들 중에 자신도 끼어서 평소와 같은 심상함과 지겨움으로 일상을 좇는 모습이 그려진다. 밤샘 근무를 하고 사동 복도를 깨운 다음엔 본관 건물 앞에서 조회를 선다. 그 건물의 가로 현판에 쓰여있던 글이 또렷이 떠오른다.


꿈이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꿈이라……. 유체는 2347의 몸을 쓰다듬는다. 이 몸, 현실은 바로 이 늙고 텅 빈 몸이다. 이 몸으로 꿈? 피부는 물론 그 피부 밑을 흐르는 혈액마저, 혈액이 머물고 분출하는 심장마저, 감정을 실어나르는 신경선마저 바싹 마르고 오그라든 생미라 같은 몸으로 꿈이라니.

이건 애초 누구 몸이었을까. 얼마의 세월이 여기 묻혀있을까. 차라리 일찍 죽더라도 제 육신으로 죽는 사형수의 운명이 이보단 낫지 않을까. 살려만 준다면 평생 나뭇가지 위에서 쪼그리고 살아도 좋다는 게 사형수들 심정이라지만, 그 간절한 절망이 남의 늙은 몸을 쓰고 악독한 희망을 품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유체가 이 황무지 같은 몸 구덩이를 거쳐 갔을까.

유체 오세인은 머리칼을 움켜쥐고 떤다.

도대체… 왜 나인가? 이런 처지에 떨어질 사람은 내가 아니어야 한다. 뭔가, 어떤 보이지 않는 커다란 착오가 나를 여기다 동댕이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정당하다.

그는 움켜쥐었던 머리칼을 놓고 고개를 든다.


들어가자.

이 몸을 쓰자.

이제부터 오세인이란 사람의 몸도 인격도 내겐 없다. 나는 덫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 특별한 상황이 아니다. 이 세계에서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방식보다 다른 존재의 희생을 조금 더 열심히 구해야 할 필요가 생겼을 뿐이다.

들어가자.  

오세인의 유체가 2347의 몸 위에 겹쳐 눕는다.

*



2347이 눈을 떴다.
흐린 전등 빛과 썩은 공기, 폐회로 TV의 감시마저 사각으로 재단된 공간에서 그 두 눈은 짐승처럼 푸른빛을 쏟아냈다. 눈꺼풀이 오르내림에 따라 두 개의 조그마한 빛 구멍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했다. 그것이 관 속의 무위를 깨는 유일한 풍경이었다.



8.     
 

2347을 호출해 맞대면한 수용기록계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눈길도 몸도 호흡마저도 상대 얼굴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살짝 고개를 숙인 2347은 표정이 전혀 없었다. 특유의 회색 눈동자는 숫제 죽은 갑각류의 눈이었다. 그 눈을 제외한 2347의 전체 모습은 반쯤 녹아내린 눈사람 같았다. 눈이랍시고 박아 넣은 조약돌 두 개 외엔 온통 삭고 녹고 야위어가는 눈사람.

수기계장은 생각이 무겁게 바뀌어 갔다. 역시 섣부른 짓이었어. 이런 자한테서 어떻게, 뭘 끄집어낼 수 있을까. 마주앉은 지 5분이 넘어갔을 때 그는 나오지도 않는 히죽 웃음을 머금고 차분히 말을 건네었다.

- 수인번호 이천삼백사십칠번.

- 예.

- 너 누구냐.

2347은 수기계장을 슬쩍 보고는 다시 고개를 내렸다. 계장은 미동도 없이 말하였다.  

- 넌 사람이 아니야. 그렇지?

- 무슨 말씀인지……. 

- 사람이 아니라 넌 뭔가… 사람 비슷한 뭔가야. 그렇잖아?

수기계장은 천천히 한 팔을 뻗어 2347의 수수깡 같은 멱살을 틀어쥐고 그를 꿰뚫을 듯 바라보았다. 느릿느릿 멱살을 흔들다 풀어주는 듯싶더니 돌연 양손으로 잡아 마구 흔들어댔다. 2347의 고개는 상대의 손아귀가 끄잡는 대로 밀치는 대로 요동쳤다. 어느 순간 계장은 동작을 뚝 멈추었다. 2347의 고개는 뒤로 비스듬히 꺾인 채였다. 계장은 눈을 감고 있었다. 아랫입술을 윗입술에 올려 포갠 틈새로 긴 날숨이 비져나오면서 그는 눈을 떴고 2347의 멱살을 놓았다.

- 잘 들어. 교도소에는 우리 교도관들이 절대적으로 막아야 하는 두 가지 사태가 있다. 그 첫 번째가 죄수의 탈옥이고 또 하나가 자살이야. 교도관으로서 나는 탈옥은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 죽고 싶어 죽겠다는 도둑놈을 꼭 그렇게 말려야 하는지 그건 지금도 잘 모르겠어. 어때?

2347은 고개만 몇 번 끄덕였다. 그 고갯짓엔 아무 뜻도 없어 보였다. 수기계장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젖히고 한동안 대답을 기다렸다.

- 내 말 어떠냐고.

- 그, 그건… 그렇지요. 자살이야 일반 사회에서도 많이들 하는 거니까.

- 바로 그거야! 도둑놈 하나도 열 경찰이 못 막는다는데 저 죽겠다고 제대로 마음먹은 놈을 우리가 무슨 수로 말리냐고. 진짜로 그런 맘먹은 놈은 당신처럼 어쭙잖은 자해 같은 거 하면서 지랄도 안 부려.

- …… 

- 2347 당신은 뭔가, 뭔가 아주 사악한 걸 전염시켜. 그건 분명해. 그게 뭐지?

2347은 마주앉은 이후 처음으로 눈을 들어 수기계장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 당장 오세인 교도 건만 해도 그래. 그 순한 친구가 당신한테 관심 가진 다음부터 사람들을 패 죽이려고 미쳐 날뛰질 않나, 무단결근에다, 지금은 아예 행방도 묘연해. 이게 다 어떻게 된 거냐고. 당신은 알 거야. 그렇지?

2347의 조약돌 눈빛이 흔들렸다. 계장이 소리를 빽 질렀다.

- 말을 해!

2347은 눈길을 내렸다. 차라리 이 양반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도움을 청할까? 하지만 이 사람이 뭘 도와줄 수 있나, 뭘.  

 - 저… 이 상의 단추 하나만 풀어도 될까요?

수기계장은 상대 얼굴에 시선을 붙박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2347은 제 앞섶의 맨 위 단추를 쥐어뜯듯 풀고 나서 여러 번

큰 숨을 내쉬었다.

계장이 말했다.

- 자자, 쉽게 생각하자고. 뭐든 나한테 털어놓고 해결할 게 있으면 함께 방법을 찾아보고 말이야, 그게 안 된다면… 그땐…… 내가 달리 도와줄 수가 있어.

- 무얼 말입니까.

- 모르나?

- 예…

수기계장의 얼굴이 씰룩였다. 욕설 같기도 하고 꼭 하고픈 말인 것 같기도 한 어떤 한 마디가 입안에서 나오지 못한 채, 다시 삼켜지지도 않은 채 돌돌 구르고 있었다. 그는 이윽고 포기한 듯, 그리고 뱉듯 말하였다.      

- 모르겠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수기계장은 면담실 구석에 놓인 산세베리아 화분을 바라보았다. 화분 옆에 서 있는 나지막한 책 진열대에는 건강관련 잡지 몇 권과 <한국의 교정행정>이라는 법무부 간행물이, 반으로 접힌 바둑판과 함께 덩그러니 들어앉아 있었다. 진열대 위에는 반 너머 써서 홀쭉해진 두루마리 휴지가 놓여있고 그 위 벽에는 큼직한 숫자로만 된 달력이 걸려있었다. 그것은 좁은 면담실 벽에 비해 터무니없이 커보였다. 휑하고 지루한 세월이 거기 다 몰려 있는 것 같았다. 달력 옆에 붙여놓은 군청색 바탕의 인쇄물에는 하얀색 글씨로 ‘희망가득 열린마음’이라는 표어가 세로로 쓰여 있었다. 수기계장의 눈길이 주변 사물들에 차례차례 머물다가 그 표어로 옮겨왔을 때 그는 2347의 눈길도 표어에 머물러있다는 것을 알았다. 계장은 중얼거리듯 말을 꺼냈다.

- 희망은 쥐뿔……. 저 달력 어때? 네모나고 칸마다 꽁꽁 막힌 게 꼭 당신 사는 감방 같다, 그렇지? 저게 당신 세월이야. 죽을 때까지 남은 세월.

그리고 2347에게 고개를 돌려 가까이 다가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2347이 탁자 너머로 상체를 들이밀자 계장은 눈길을 옆으로 틀었다. 한동안 그렇게 있다가 2347의 눈을 정면으로 쏘아보며 말하였다.

- 나 교도관 생활 자그마치 28년이야. 당신, 남우세 없이 쥐도 새도 모르게 갈 수 있어. 아주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준다고. 당신 속에 든 게 뭔진 모르지만 이제 당신 선에서, 당신 손으로 끝내라. 어때? 
2347이 눈을 감았다. 계장은 가만히 기다렸다. 둘 중 누군가 담배를 피운다면 필터까지 족히 태웠을 시간. 2347의 눈꺼풀이 들리기 전에 그의 입이 먼저 달싹였다. 저는……, 하며 무겁게 눈을 떴다. 지켜보던 계장과 눈길이 마주쳤다. 

-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머리가 나쁩니다.

수기계장이 끄덕이며 웃었다. 그래, 그렇겠지, 그렇겠지, 중얼거리다 웃음기 그대로 말했다.

- 피차 선수끼리 까불지 말자.

2347이 대답했다.

- 생각… 해 보겠습니다. 진심입니다.

2347이 엉거주춤 일어나며 수기계장에게 꾸벅 인사를 할 때 그 몸속의 오세인은 옛 상사의 품에 얼굴이라도 묻고 싶어졌다. 그는 면담실 문 손잡이를 잡고서 가만히 뒤를 돌아다보았다. 수기계장은 고개를 숙인 채 지친 듯 앉아 있었다. 2347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수기계장이 벌컥 일어나 다가왔다. 어금니를 꼭 문 채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있어서 웃음도 하얘보였다.

- 생각해 볼 거 없어. 지금, 내가, 도와준다. 지금 당장!

계장은 두 손으로 2347의 목을 쥐고 조르기 시작했다. 2347은 상대의 가슴을 밀며 몸부림쳐 저항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숨만 더 찼고 목이 더 부러질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차라리 잘 됐다…, 2347 몸속의 오세인은 손을 내리고 온 몸의 힘도 내리고 눈을 감았다. 차라리 잘 됐어. 그러자 계장의 손아귀에서도 힘이 풀렸다.  

2347이 인솔 교도관과 함께 긴 복도를 걸어 제 감방문 앞에 섰을 때 수용기록계장의 나이를 가늠해 보고 있었다. 당장 접근이 용이하긴 한데… 아니야, 아니지. 2347은 고개를 저었다.




9.


한밤, 잠결에 듣는 사동 밖 길고양이 소리가 오늘따라 섹시하다. 꽁지는 담요 속에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우라지게 섹시해.

빠돌은 이를 갈며 자고 있다. 그는 좀체 잠꼬대도 없이 얌전히 자는 편인데 오늘은 왠지 다르다. 왠지? 꽁지는 가만히 웃었다. 왠지가 아닐 것이다. 저도 아는 것이다. 곧 무슨 일이 있을지 깊은 잠 속에서도 느낀 것이다. 그러나 알 뿐, 느낄 뿐이다.

그는 자고 있으니까. 

감방 내에서 서열 역전이 일어나면 가장 잔인하고 지속적인 서열 확인이 뒤따르는 법이다. 굴욕에 익숙한 꽁지였지만 그건 우갑춘이 만들었던 지옥보다 훨씬 지독했다.

꽁지가 한번은 용기를 내어 사정을 해보았다. 우, 우리끼리 이러지 마, 말자…요.

하지만,

우리? 너 같은 인간똥개하고 나하고 우리? 꽁지는 그날 종일, 시시때때로 ‘싸가지 없는 입’을 맞아야했다.

길고양이 소리가 유난히 낮고 잠잠히 들려온다.

명검’은 완성되었다. 이제 그 날빛을 피로 적시며 먹이 줄 일만 남은 것이다. 길고양이들 소리가 갑자기 크고 날카로워졌다. 꽁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들도 아는 것이다. 곧 환상적인 일이 벌어질 줄 아는 것이다. 그는 바지춤에서 그간 열과 성을 다해 벼려온 칼을 꺼내 쥐었다. 손이 떨렸다. 그 떨림은 팔과 어깨에까지 옮아갔다.

단숨에, 단숨에, 단숨에!

그가 속으로 용을 쓰는 소리, 그 가슴 속 비명이 최고조로 부풀었다가 끝내 한순간의 독한 결기가 되고 신음이 되어 삐어져 나왔다. 귀밑 턱뼈가 도드라지도록 악 물고 있던 어금니도, 손목의 힘도 풀렸다.   

폭탄처럼, 빠돌의 비명이 터진 건 꽁지가 손에서 칼을 떨구고도 5초가 지난 후였다. 고통과 공포, 절망의 울부짖음이 사방과 사동 복도를 흔들었다. 빠돌은 검붉은 체액으로 젖은 제 두 눈을 손과 팔로 감싸고 뒹굴다 소스라치듯 일어나, 눈을 감싼 그 채로 이리저리 마구 달려서 사방 감방 벽에 몸을 부딪고 쓰러졌다. 기진한 온몸이 파들거렸다. 꽁지의 벌어진 앞니가 입술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웃고 있었다. 웃으면서 울먹울먹 웅얼대었다. 인간똥개한테 물리면 더 아프다, 너?

야간사동 담당들의 급한 발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10.



사동 복도마다 담당 교도관들의 폐방점검 소리가 들리고 폐방 나팔이 울렸다. 교도소의 길고 지루한 하루가 또 끝난 것이다. 봉사원들의 의기양양한 고함소리가 들린다.

석식배식, 배식준비! 

2347은 물컵에 담가두었던 틀니를 꺼내어 물었다. 망가진 틀니의 상악과 하악을 딱딱 부딪치며 통증 때문에 인상을 썼다. 그때 시찰구가 열렸다. 김강준이 교도봉으로 창살을 탁탁 쳤다.

- 이봐, 2347영감님. 요즘 들어 당신은 나하고 뭐 그리 면담할 게 많아? 아예 연애를 하자는 거야, 뭐야. 매일 무슨 편지는 그렇게 보내고. 독방이라 너무 심심한가? 다시 혼방 보내줘? 내가 아무리 이 꿀림동 고충처리 주임이라도 그렇지, 이 양반아. 내가 당신 개인 고충처리 주임이야?

그는 말을 멈추고 버릇대로 잠시 개소리를 냈다. 크르르르…….

- 그렇잖아도 꽁진가 뭔가 그 내시 불알만도 못한 놈 개사고 친 거 땜에 요즘 계속 돌아버리는 판인 거, 영감도 알 거 아냐. 차암 나, 사람이 어떻게 자는 놈 눈깔을 베냐고……. 아무튼 당신 또 편지다 뭐다 나한테 괜히 친한 척하면 그땐 아무리 노인네라도 가만 안 둬. 그 다 규정위반인 거 알지?

2347은 늙은 딴에 싱긋, 웃었다.

- 어따따, 웃기는… 어쨌거나 요즘 영감 행형성적 양호한 점을 감안해서 내 나중에 범털 들어오면 같은 방으로 한번 만들어 볼게. 평생 면회 오는 사람 하나 없는데 김 한 장이라도 쏠쏠히 얻어먹으라고.

2347은 고개를 꾸벅하며 입속말로 읊조렸다. 둥글게둥글게, 둥글게둥글게…… 지그시 눈을 감고 세월없이 반복했다. 둥글게둥글게둥글게둥글게,





- 끝 -